일본 731부대 인사명단 첫 공개… 아시아 전역 네트워크 드러나

일본 731부대 인사명단 첫 공개… 아시아 전역 네트워크 드러나

일본 국립공문서관이 올해 5월 연구자들의 요청으로 공개한 1644부대 인사 명단이 일본 제국 군의 생화학전 프로그램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1644부대는 난징을 거점으로 활동한 731부대의 또 다른 분파로, 이번 인사 명단 공개는 일본의 생화학전 네트워크 전체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나가노현에 거주하는 77세 다케가미 가쓰토시는 수년 전 아버지의 유품 상자에서 1644부대에서 복무했던 아버지의 사진들을 발견했다. 그는 “많은 사람을 죽이면 영웅이 되고 승진한다는 것이 당시 군대의 논리였다”며 “아버지가 나쁜 일에 연루됐을까 봐 걱정이 되어 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에 공개된 인사 명단을 활용해 생존한 부대원들을 추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난징대학교의 뤼징 교수는 “인사 명단은 보물과 같다”며 이 자료가 일본 생화학전 시스템의 구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연구자들은 최근 몇 년간 중국 동북부의 731부대를 중심으로 중국 남부 광저우의 8604부대, 동남아시아 싱가포르의 9420부대까지 아시아 전역에 걸친 거대한 생화학전 네트워크를 발견해왔다. 이는 일본 제국 군의 생화학전 프로그램이 단순히 중국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점령지 전체에 체계적으로 구축된 조직적 범죄였음을 보여준다.

 

각 부대는 “방역 급수 부대” 같은 완곡한 명칭을 사용하면서 자군의 건강은 유지하고 적군에게는 페스트와 말라리아 같은 질병을 퍼뜨리는 임무를 수행했다. 뤼징 교수는 “각 부대가 현지 조건에 맞춰 환경의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이를 적에게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731부대 청년단에 14세에 입대했던 95세 시미즈 히데오는 현재 이 만행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마지막 생존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작년 중국을 방문해 사과했으며, 이로 인해 일본 내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시미즈는 “유리병에 담긴 인체 장기 표본들로 가득한 방”을 목격했으며, 특히 “태아가 든 여성의 전신 표본”이 가장 충격적이었다고 회상했다.

 

나가노의 한 박물관에서 731부대 관련 전시를 기획한 전직 교사 하라 히데아키는 “전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원폭 피해 같은 우리 자신을 피해자로 보는 관점은 쉽게 나오지만, 가해자 역할은 잘 논의되지 않는다”며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731부대는 1936년부터 1945년까지 중국 동북부에서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생체 해부, 마취 없는 수술, 세균 감염 등의 인체실험을 자행했으며, 실험 대상자들을 ‘마루타(통나무)’라고 불렀다. 이 부대만으로 약 3,000명이 죽임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며, 다른 분과에서 개발한 생화학무기로 인한 사망자는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여겨진다.

 

러시아 연방보안청(FSB)이 올해 공개한 기밀 해제 문서는 731부대의 만행을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1948년 일본 세균학자에 대한 심문 기록에 따르면, 731부대는 하얼빈 근교 마을에서 중국 민간인 수백 명을 벌판에 몰아넣고 페스트, 탄저균, 콜레라균이 든 포탄을 발사한 뒤 감염률을 계산해 병원균의 ‘효력’을 측정했다.

 

소련 국가보안기관이 1945년부터 1948년까지 포로로 잡힌 일본 생화학무기 관련자들을 심문한 결과, 일본군은 소련, 중국, 미국을 상대로 한 세균전 계획을 비밀리에 준비해왔으며,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과 일본의 동북 중국에서의 소련 공격 준비 시점에 이미 생화학전 연구를 완료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후 도쿄 국제 군사재판에서 일본 관리 7명이 전범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731부대 지도부는 인체실험 데이터를 미국에 제공하고 면책권을 받아 처벌을 피했다. 케임브리지대학교 동아시아사 전문가인 바라크 쿠시너 교수는 “이는 최고 수준의 정의 실종”이라며 “미국인들이 데이터를 독점하고 소련이 손에 넣는 것을 막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는 현재까지 731부대의 만행에 대해 공식 사과하지 않고 있으며, 2002년 도쿄 법원이 일본군의 인체실험과 생화학전 실시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포로에 대한 실험을 입증할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역사 은폐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Aising,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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