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레이는 2019년부터 유엔개발계획(UNDP)과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 커뮤니케이션 담당관이었다. 2025년 12월 유엔을 떠나기 전, 그는 조직 내부에서 진행 중인 디지털 ID 프로그램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철저히 묵살당했다. 레이는 라스트 아메리칸 베가본드(TLAV)와의 인터뷰에서 “내부 도입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유엔이 직원들과의 투명한 협의 없이 극도로 위험하고 침해적인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직원들이 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고려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엔은 2020년 후반부터 직원용 디지털 ID 도입을 시작했고, 2024년 6월 첫 번째 구현 단계에 돌입했다. 이 시스템은 블록체인 기술과 생체 인식을 활용하여 직원들의 개인정보를 관리하고 공유하도록 설계되었다. 유엔은 이를 모든 유엔 조직에서 사용 가능한 “안전하고 이동 가능하며 상호 운용 가능한” 시스템이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레이는 유엔이 직원들의 프라이버시와 보안에 대한 적절한 보호 장치 없이 이 프로그램을 서두르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유엔이 내부 직원용 디지털 ID를 다루는 방식이 전 세계 디지털 ID 프로젝트에 대한 유엔의 접근 방식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믿고 있다.
2024년 9월 17일, 레이는 “혁신의 날: 불꽃에서 시스템으로 – 유엔 디지털 ID 여정”이라는 1시간짜리 웨비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유엔 디지털 ID 프로그램 담당자들은 프로젝트의 역사와 미래를 설명했다. 레이는 프라이버시, 책임, 데이터 보안에 관한 질문을 던졌지만, 어떤 답변도 받지 못했다. 레이가 특히 주목한 부분은 유엔 디지털 ID 포털의 이용 약관이었다. 약관에는 유엔국제컴퓨팅센터(UNICC)와 개발자들이 직원들의 시스템 사용으로 인한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다. 사실상 책임을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전가하는 조항이었다.
9월 24일, 레이는 UNICC에 후속 질문을 이메일로 보냈다. 그는 유엔이 직원들의 동의를 구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지, 디지털 ID 사용을 거부하는 직원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 물었다. 무엇보다 유엔이 디지털 ID 기술을 통해 개인의 생체 인식, 인사, 의료, 출장, 보안, 급여 데이터를 수집하고 저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적 근거가 무엇인지 질문했다. 프로그램 책임자 마시밀리아노 메렐리의 답변은 단순히 FAQ 섹션을 참조하라는 것이었다. 레이는 제기된 우려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불충분하다며 재차 압박했다. FAQ는 여러 질문에 답하지 못했고, 보안 및 프라이버시에 관한 답변은 형식적이고 모호했다. 레이는 사이버보안 프레임워크 접근 권한과 데이터 프라이버시 영향 평가 사본, 법률국과의 협의 세부사항을 요구했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
메렐리가 레이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자, 그는 9월 30일 유엔 내부감독국(OIOS)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레이는 프라이버시, 책임, 보안 문제가 왜곡되고 무시되고 있으며, 직원들과의 충분한 협의와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그는 UNEP 동료들을 대상으로 비공식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9명의 응답자 중 68%가 고용을 위한 필수 ID에 반대했고, 84%가 유엔 직원에게 디지털 ID가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다음 날, 레이는 설문조사 배포가 유엔 행동 강령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OIOS는 고발 사건을 조사하지 않겠다며 레이를 정보통신기술국(OICT)으로 안내했다. 레이는 OICT가 문제가 되는 사업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며 반대했으나, OIOS는 이 건이 조사를 정당화하는 비행 문제가 아니라고 재차 밝혔다. 10월 27일 이후 유엔 관계자들과의 모든 소통이 중단되었고, 그의 고용은 12월에 종료되었다.
유엔 디지털 ID 프로그램은 2020년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한 “함께 유엔을 재상상하자 챌린지”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유엔 세계식량계획에 있던 메렐리가 주도한 제안이 우승작으로 선정되었고, 2024년 6월 첫 버전이 출시되었다. 첫 버전은 연금 처리와 관련하여 제한적으로 도입되었지만, 2025년 6월과 11월에는 유엔아동기금 퇴직 직원들로 확대 적용되었다. 메렐리는 유엔 디지털 ID가 단순한 기술이 아닌 문화적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엔은 단지 자체 직원들을 위한 디지털 ID의 옹호자에 그치지 않는다. 유엔은 전 세계 국가들의 디지털 ID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가장 목소리 높은 지지자 중 하나다.
유엔은 지속가능발전목표의 일환으로 개발도상국들에 디지털 ID를 촉구해 왔다. 디지털 ID 제도에 참여하지 않는 개인이 배제될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유엔은 디지털 신원을 “인권”으로 홍보하고 있다. 2023년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우리의 공동 의제”를 통해 은행 계좌 및 모바일 결제 앱과 직접 연결되는 범용 디지털 ID 시스템을 제안했다. 유엔은 은행이나 모바일 결제 계좌와 연결된 디지털 ID가 사회 보호 범위 전달을 개선하고 프로그램 설계에서 누출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제안은 세계경제포럼이 생체인식으로 신원을 추적하고 검증하는 시스템을 추구하는 움직임과 맥을 같이한다.
2024년 9월 유엔 미래 정상 회의에서 한국을 포함한 193개 회원국은 “미래를 위한 협약”을 채택했다. 부속문서인 “글로벌 디지털 콤팩트”는 디지털 공공 인프라 구축을 핵심으로 담고 있다. 디지털 공공 인프라는 디지털 ID, 신속 결제 시스템, 대규모 데이터 교환이라는 세 요소로 구성된다. 흥미롭게도 협약 문서에 “디지털 ID”라는 단어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이는 전체 개념의 근간을 이룬다. 비구속적 결의안임에도 영국 등 여러 국가들은 이미 디지털 ID 의무화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러시아, 이란, 북한, 벨라루스, 시리아, 니카라과 등 7개국만이 반대했다. 레이의 경고는 단순히 한 조직 내부의 문제를 넘어선다. 유엔이 자체 직원들에게 충분한 동의나 보호장치 없이 디지털 ID를 강요하는 방식은, 같은 조직이 전 세계에 권고하는 디지털 신원 체계의 본질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