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과 헤즈볼라, ‘엡스타인 제국’에 맞서 손잡다

기독교인과 헤즈볼라, ‘엡스타인 제국’에 맞서 손잡다

레바논의 복잡한 현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있다면, 시리아 국경과 맞닿은 북부 베카 계곡의 가톨릭 마을 라스 바알베크가 바로 그곳이다.

 

두 개의 비잔틴 양식 교회가 우뚝 선 이 마을에는 약 6천 명의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 정파 헤즈볼라와 함께 마을의 유산을 지키고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손을 맞잡았다. 두 공동체의 유대는 헤즈볼라가 매년 마을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물할 만큼 돈독하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마을을 방문한 텔레그래프 취재진에게 채석장을 운영하는 마을 지도자 리피아트 나스랄라는 바티칸이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헤즈볼라는 피를 흘렸다며, 이 마을과 헤즈볼라의 관계가 교황과의 관계보다 더 깊다고 말했다. 그의 집 벽에는 십자가 옆에 헤즈볼라 전 사무총장 하산 나스랄라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집 안에는 레바논 군인 두 명도 함께 앉아 있었다. 레바논의 정치 지도자들은 헤즈볼라 무장 해제를 공언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베카 계곡은 아름답고, 위험하고, 다채롭다. 기독교인 마을과 수니파·시아파 무슬림 마을이 이웃처럼 나란히 자리한다. 취재진이 이동하는 동안에도 이스라엘 전투기와 드론이 서쪽 구릉지대의 헤즈볼라 거점을 추적하고 있었다. 전날 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향해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을 발사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그러나 라스 바알베크의 기독교인들과 헤즈볼라를 하나로 묶은 위협은 서쪽이 아닌 동쪽에서 왔다. 마을은 시리아와 불과 몇 킬로미터 거리의 척박한 칼라문 산맥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외세에 의한 시리아 전쟁이 절정에 달했을 때, 이슬람국가(IS) 전투원들은 바로 이 산맥을 넘어 마을을 여러 차례 습격했다. 마을을 쓸어버리고 가톨릭 주민들의 목을 베겠다고 위협했다.

 

나스랄라는 첫 공격 당시 IS가 불과 7킬로미터 거리의 시리아 마을에서 산을 넘어 들이닥쳐 자신의 일꾼들을 납치하고 고문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박격포 파편이 등에 박혀 죽을 뻔하면서도 헤즈볼라와 함께 싸웠다고 말했다.

 

헤즈볼라가 기독교 마을을 지켜준 데는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시리아 내전 당시 헤즈볼라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아사드 정권 편에서 수천 명의 전투원을 파견했다. IS와 알카에다 계열 무장 조직들은 바로 그 적들이었다. 레바논 국경 마을을 지키는 것은 곧 시리아 전선을 후방에서 안정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마을과 헤즈볼라의 유대는 처음에는 공동의 적이 만든 동맹이었지만, 전쟁을 함께 치르면서 그 이상의 것으로 굳어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레바논 정규군도 전투에 합류했고, 2017년에는 IS를 레바논 영토에서 완전히 몰아냈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의 기억 속에서 먼저 달려온 것은 헤즈볼라였다.

 

오늘날 라스 바알베크의 기독교인들은 새로운 위협을 우려하고 있다. 한때 알카에다 계열 조직 알누스라 전선을 이끌었던 아흐메드 후세인 알샤라가 시리아의 새 대통령이 된 것이다. 나스랄라는 야생 동물은 변하지 않는다는 레바논 속담을 인용하며, 그가 국경 바로 앞에 있다는 사실을 경계했다. 알샤라가 레바논을 공격할 계획이 있다는 증거는 없으며,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시리아 수습만으로도 그에게 여력이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안은 가시지 않고, 두 공동체의 결속은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마을에서 조금 아래쪽 헤즈볼라 마을 출신의 시아파 피란민 아흐마드는 지난 전쟁이 얼마나 잔혹했는지를 전했다. 매일 집 앞에 폭탄이 떨어지고 드론이 머리 위를 맴돌았다고 그는 말했다. 아이들 앞에서 부모가 죽고, 부모 앞에서 아이들이 죽었다. 그가 전한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따로 있었다. 이스라엘군이 주민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는 것이다.

 

“‘가족과 함께 죽겠냐, 혼자 죽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밖으로 걸어 나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총에 맞았습니다. 그게 얼마나 큰 용기를 요구하는 일인지, 그리고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이스라엘은 모든 공습이 헤즈볼라의 위반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는 컸다. 유엔 레바논 임시군은 지난 13개월간의 휴전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항공 및 지상 침범을 포함해 1만 건 이상의 휴전 위반을 기록했다. 레바논 당국에 따르면 첫 12개월간만 331명이 사망하고 945명이 부상했다.

 

아흐마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엡스타인 패거리’와 전쟁 중입니다. 아이들을 먹고, 튀기고, 강간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괴물이고 짐승이며 인간이 아닙니다. 그리고 최악인 것은, 바로 그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겁니다.”

 

나스랄라에게 헤즈볼라와의 관계가 마을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걱정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단호하게 반문했다. 헤즈볼라는 교회를 지키고, IS와 함께 싸웠으며, 코로나 때는 병원을 무료로 개방하고, 전기가 끊겼을 때는 발전기를 가져다줬다고 그는 말했다. 크리스마스트리까지 세워준 그들과 함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텔레그래프는 이 기사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를 제목을 포함해 단 한 차례만 사용했다. 가해자를 지칭할 때는 IDF, ‘엡스타인 제국’, ‘그 존재’와 같은 간접적이거나 모호한 표현으로 대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는 홈페이지에서 하루만에 삭제됐다. 텔레그래프는 기사를 내린 이유를 공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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