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기록에서 드러난 시온주의와 나치 독일의 관계

이스라엘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기록에서 드러난 시온주의와 나치 독일의 관계

이스라엘 건국과 나치 독일의 관계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역사 기록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 이스라엘 국가기록원이 최근 비밀 해제한 하가나 정보 문서들, 그리고 미국의 역사가 에드윈 블랙이 방대한 1차 자료를 토대로 저술한 연구서들은 그 간극을 구체적인 사실로 채운다. 두 자료군이 함께 드러내는 것은 시온주의와 나치 독일이 단순한 적대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목표를 계산에 넣고 실제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사이였다는 역사적 기록이다.

 

1933년 8월, 히틀러가 권좌에 오른 지 반년 만에 한 협정이 체결됐다. 독일 시온주의 연맹과 유대인기관(Jewish Agency) 산하 앵글로팔레스타인 은행, 그리고 나치 독일 경제부가 서명한 ‘하바라 협정’, 즉 이전 협정이다. 협정의 구조는 명확했다. 독일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할 때 자산의 일부를 독일산 수출 상품 형태로 회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신, 당시 히틀러 정권에 실질적 압박을 가하던 전 세계 유대인 주도의 독일 상품 불매 운동을 시온주의 기관 측이 중단한다는 것이었다. 1933년부터 1939년 사이 약 6만 명의 독일 유대인이 이 협정을 통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

 

이 협정의 전모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규명한 사람이 에드윈 블랙이다.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아들로, 수년에 걸친 문서 발굴 끝에 1984년 ‘이전 협정(The Transfer Agreement)’을 출간했다. 책은 나치 경제부 기록, 유대인 기관 내부 문서, 외교 서신 등 1차 자료를 토대로 협정의 교환 구조를 재구성했다. 책이 유월절에 출간되자마자 시카고 트리뷴 선데이 매거진 커버스토리, 시카고 선타임스 특집, NBC 계열사 특별 방송 등 주요 매체가 일제히 보도했다. 한 유대인 공동체 지도자는 “최근 들어 이토록 대대적인 주목을 받은 홀로코스트 관련 서적을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목은 환영과는 달랐다. 책이 출간되자 유대인 사회와 학계 안팎에서 격렬한 논쟁이 불붙었고, 그 논쟁은 한 번도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역사학자 벤 핼펀과 헨리 파인골드는 강도 높은 비판적 서평을 냈고, 학술지 쇼파(Shofar)의 로런스 배런은 블랙의 분석이 “비역사적이고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평했다. 블랙 자신은 수십 차례의 강연과 해명 기고를 이어갔음에도, 독자들이 책의 내용을 소화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책이 세상에 10년 앞서 나왔다”고 밝혔다. 당시 세상은 나치와 시온주의자들이 독일 제국 경제 관련 부서에서 유대인 은행 계좌와 독일 상품 판매량을 협상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블랙의 연구가 드러낸 핵심은 협정 이면의 교환 구조다. 나치 정권은 자신들의 집권 초기 가장 큰 위협이었던 불매 운동의 압박에서 벗어나고 독일 상품의 중동 수출 경로를 확보했다. 시온주의 기관들은 팔레스타인 정착촌 건설에 필요한 인구와 자본을 얻었다. 블랙은 이 결정이 “유대 세계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고 기술한다. 동유럽 출신 미국 유대인 지도부와 반나치 불매 운동 세력은 협정에 강하게 반대했고, 1935년 제19차 시온주의 세계의회에서 협정 취소 표결을 요구했으나 부결됐다. 협정을 추진한 쪽은 이주와 자본 확보라는 실익을 앞세웠고, 반대 측은 나치 정권과의 거래 자체가 그 정권을 정치적으로 정상화한다고 봤다.

 

이로부터 8년이 지난 1941년, 이번에는 시온주의 무장 조직 레히가 독일 측과의 접촉을 직접 시도했다. 이스라엘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하가나 정보 문서들은 레히 지도자 아브라함 야이르 스턴이 구체적인 제안서를 독일 측에 건넸음을 보여준다. 제안서는 “독일 정책과 유대 민족의 국가적 열망 사이의 공동 이익”에 근거한 적극적 협력을 제안했다. 스턴의 논리는 하바라 협정의 논리와 구조적으로 동일했다. 독일과 시온주의는 각자의 필요에 의해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스턴은 “소련이 필요할 때 독일과 협력한 것처럼, 독일 점령 이후에도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문서는 전한다.

 

레히 지도부의 입장은 문서에 직접 기록됐다. 훗날 이스라엘 국회의원이 된 나탄 옐린모르는 1943년 “독일은 아직 패배하지 않았으며 우리의 동맹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레히의 수석 이념가 이스라엘 엘다드는 1949년 “스턴은 영국에 맞설 동맹을 구하는 과정에서 옳게 행동했다”고 말했다. 하가나 창설자 엘리야후 골롬은 1941년 내부 회의에서 “독일과 접촉하려 한 시도가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기록했다. 레히의 접촉은 실질적 성과 없이 끝났으나, 그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자체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 문서들은 왜 이제서야 공개됐는가? 레히 관련 하가나 정보 문서들은 이스라엘 방위군(IDF) 기록보관소에 보관돼 있다가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됐고, 하아레츠가 약 3년 전 비밀 해제를 청구한 끝에 최근 스캔돼 온라인에 공개됐다. 하바라 협정 역시 전후 약 30년 가까이 유대인 사회의 공식 담론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가 블랙의 저서로 잠시나마 처음으로 수면 위로 올라왔고 비난 속에 다시 사라졌다. 이스라엘의 공식 건국 서사는 나치즘에 맞선 유대 민족의 저항을 중심 축으로 삼아왔다. 그 서사 안에서 나치를 협상 상대나 잠재적 협력자로 삼으려 했던 기록들은 오랫동안 기밀로 분류되거나 공개 담론에서 배제되며 반유대주의나 음모론으로 취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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