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하는 농가, 사들이는 빌 게이츠

파산하는 농가, 사들이는 빌 게이츠

미국 가족농의 파산이 급증하는 가운데, 빌 게이츠, 사모펀드, 연기금이 빈 농지를 사들이고 있다. 미국의 2025년 농업 파산 신청이 전년 대비 46% 늘어 315건을 기록하면서 3년 연속 증가세를 기록했다. 중서부는 121건이 발생해 70% 급증했고, 남동부는 105건으로 69% 늘었다. 두 지역이 전국 파산 건수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했다. 아칸소는 33건으로 전국 최다였는데, 전국 1위 쌀 생산지이자 상위권 가금류 생산지여서 농업 의존도가 특히 높다.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비료 가격 폭등이 수년간 쌓인 손실에 기름을 부었지만, 파산한 농지를 흡수한 세력은 가족농이 아니라 대형 투자 기관과 억만장자들이었다.

 

이란 전쟁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비료 공급에 직격탄을 날렸다. 요소 비료 가격은 2월 말 이후 47% 폭등하며 사상 최대 월간 상승폭을 기록했고, 농업용 경유도 46% 올랐다. 이란의 사우스 파스 석유화학 단지와 카타르의 라스 라판 액화천연가스 시설이 손상돼, 분쟁이 끝나도 가격이 쉽게 내려오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노스다코타 주립대학 연구팀은 낙관적 시나리오에서도 요소 가격이 7월에 단기 톤당 784달러(약 110만 원)까지 치솟고, 해협 봉쇄가 가을까지 이어지면 996달러(약 140만 원)를 넘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비료 위기 이전부터 농가 재정은 이미 한계에 다가서 있었다. 날씨 피해와 관세 부담이 겹치면서 해마다 대출을 늘려야 했고, 미국 농무부(USDA)는 올해 농업 부문 총 부채가 사상 최고인 6,247억 달러(약 876조 원), 이자 비용만 330억 달러(약 46조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미농업연맹(AFBF)이 4월 초 5,700명 이상 농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70%가 이번 재배 시즌 비료를 충분히 살 여력이 없다고 응답했다. 남부는 78%에 달했는데, 가격이 급등하기 전 비료를 선계약한 비율이 19%에 불과했던 탓이다. 옥수수 손익분기점은 부셸(약 25.4kg)당 4.70~4.90달러, 대두는 10.80~11.25달러로 현재 시장 가격과 엇비슷하거나 높아서, 농가들은 비료 투입량을 줄이거나 질소 의존도가 낮은 작물로 갈아타고 있다. 공식 파산 통계가 실제 위기를 과소평가한다는 지적도 있다. 파산 신청을 의미하는 챕터 12는 소득의 대부분이 농업에서 나와야 신청할 수 있어, 농장 밖 수입이 커진 가족농은 그 문턱을 넘지 못한다. 부채가 감당 불가능한 수준까지 불어나도 파산 신청 대신 폐업을 택할 수밖에 없는 농가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현재 파산 건수가 2019년의 절반 수준이고 부채 비율도 1980년대 농업 위기에 비해 낮다는 점에서 아직 위기 이전 단계라는 시각도 있지만, 3년 연속 증가세는 구조적 악화를 가리킨다.

 

농가가 무너지는 사이 농지 가격은 오히려 올랐다. 2025년 미국 농지 평균 가격은 에이커당 4,350달러(약 610만 원)로 전년 대비 4.7% 상승했다. 농지는 다른 자산군과 달리 변동성이 낮다. 부동산투자신탁(REIT) 팜랜드파트너스 최고경영자 루카 파브리는 농지 가치가 5% 떨어지면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해로 기록된다고 표현할 정도다. 이 안정성이 대형 자본을 끌어당기고 있다. 뉴빈, PGIM(프루덴셜 파이낸셜 산하), 에이커트레이더 같은 기관투자 플랫폼들은 연기금과 대학기금,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농지 투자 상품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미국 내 기관 투자자의 농지 투자 규모는 2020년부터 2023년 사이에 두 배 이상 늘어 166억 달러(약 23조 원)를 넘어섰고, 미국 농무부 추산으로 전체 농지의 30%가 이미 비농업인 소유다.

 

개인 투자자 중 가장 상징적인 인물은 빌 게이츠다. 그는 17개 이상의 주에 걸쳐 약 24만 8,000에이커(약 10만 헥타르)의 농지를 보유해 미국 최대 사유 농지 소유자 자리에 올랐다. 투자 법인 캐스케이드 인베스트먼트는 2017~2018년 캐나다연금계획투자위원회(CPPIB) 보유 농지 매입과 워싱턴 동부 ‘100서클스’ 농지 인수 두 건에만 6억 9,000만 달러(약 1조 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게이츠 본인은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그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놓고 보면 농지는 퍼즐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게이츠재단은 유전자변형(GMO) 종자 개발과 비료 보급을 앞세운 아프리카 녹색혁명 프로그램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왔고, 캐스케이드는 임파서블푸즈 같은 대체식품 기업과 다수의 농업기술 스타트업에도 투자하고 있다. 농지에서 종자, 비료, 식품 기술까지 이어지는 이 수직적 포트폴리오가 식량 산업의 민간 독점을 향한 포석이라는 시각이 비판론자들 사이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게이츠재단이 특정 농업 모델을 개발도상국에 이식하는 방식을 두고도 수혜국 농민과 시민사회가 반발해 온 점은 이 의구심을 더욱 키운다.

 

사모펀드의 농업 진출도 빨라지고 있다. 시민단체 PESP(민간자본 이해관계자 프로젝트)가 2025년 3월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사모펀드가 인수한 농업 기업들은 고부채 구조와 비용 절감을 밀어붙이면서 노동권 침해와 파산 사태를 잇따라 일으켰다. 윈드밀 팜스와 그림웨이 팜스는 노동자 학대 혐의를 받았고, 프리마 와오나와 트리니타스 파밍은 파산했다. 전국가족농연합(NFFC)에 따르면 상위 20%의 농장이 미국 농지의 약 70%를 차지하며, 옥수수 종자 시장의 85%, 곡물 거래의 90%를 각각 4개 기업이 쥐고 있다. 투자 운용사 PGIM은 고령화된 농부 세대와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기술 발전이 농지 소유권을 개인에서 기관으로 넘길 것으로 전망한다. 농지 값이 가장 많이 오른 지역에서 생산자 수가 가장 많이 줄었다는 인베스티게이트 미드웨스트의 분석은 그 흐름이 이미 한창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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