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료, 전쟁이 만든 영국 장바구니 위기

비료, 전쟁이 만든 영국 장바구니 위기

영국에서 식료품 가격이 2021년 생활비 위기 시작 이후 올해 말까지 50%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저소득 가구를 중심으로 식탁 위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에너지 및 기후 정보 싱크탱크 에너지및기후정보국(ECIU)의 분석에 따르면, 5년 사이 누적된 식품 가격 상승 폭이 그 이전 20년 치와 맞먹는 수준이며, 상승 속도는 이전보다 약 네 배 빨라졌다. 에너지 가격 급등과 지정학적 충격이 잇따르면서 영국의 식품 공급망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품목별 상승률은 더욱 가파르다. 파스타는 50%, 냉동 채소는 55%, 초콜릿은 58%, 달걀은 59%, 소고기는 64% 각각 올랐고, 올리브오일은 113% 급등해 5년 전의 두 배를 넘었다. ECIU는 이 품목들이 에너지 비용과 합성 비료 가격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고 분석했다. 영국 가구의 평균 식품 지출액은 2022년과 2023년 두 해에만 605파운드(약 109만 원) 늘어났으며, 이 가운데 244파운드는 에너지 가격 상승에서 비롯됐다.

 

식품 가격이 에너지 가격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핵심 고리는 합성 비료다. 산업용 질소 비료는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추출해 공기 중 질소와 결합하는 하버-보슈 공정으로 생산된다. 전 세계 작물과 축산물 생산의 절반 가까이가 이 합성 비료에 의존하며, 영국은 필요 비료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양을 국내에서 생산해 나머지는 해외에서 수입한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비료 생산 비용이 함께 오르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농장에서 식탁으로 전가된다.

 

이미 누적된 가격 압박 위에 중동 전쟁이라는 새로운 충격이 더해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봉쇄로 세계 합성 비료 공급의 약 30%가 통과하는 통로가 막히면서, 비료의 주원료인 요소 가격은 올해 초 톤당 300달러(약 41만 원) 수준에서 700달러(약 97만 원) 가까이로 치솟았다. ECIU의 식품 및 농업 분석가 크리스 재카리니는 “트럼프의 중동 전쟁으로 유가와 가스 가격이 치솟으면서 장바구니 물가가 더욱 올라갈 것”이라고 밝혔다. 잉글랜드 중부의 소고기 농장주 데이비드 바턴은 비료 가격이 톤당 370파운드에서 500파운드 가까이로 뛰었다며, 개별 농가가 이 가격 충격을 모두 떠안는 상황에서 식량 생산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가격 상승의 충격은 저소득 계층에 집중된다. 식품 자선단체 푸드 파운데이션(Food Foundation)의 분석에 따르면, 가장 빈곤한 가구는 균형 잡힌 식단을 유지하려면 가처분 소득의 최대 45%를 식비에 써야 하며, 자녀가 있는 경우 이 비율은 70%까지 올라간다. 애나 테일러 상임 이사는 “식품 가격이 이렇게 높이, 이렇게 빠르게 오르면 저소득 가구에 남은 선택지는 식탁을 줄이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끼니를 거르는 어른, 배를 곯는 아이, 식이 관련 질환 증가로 이어지고, 부모는 일터를 잃고 여력 없는 국민보건서비스(NHS)는 더 큰 부담을 떠안는다”고 덧붙였다.

 

지속적으로 오르는 식품 물가는 이미 정치 쟁점으로 부상했으며, 전문가들은 2026년에도 유권자들이 이 문제를 강하게 의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잉글랜드 은행은 비료, 에너지, 운송비 상승 영향으로 올해 말 식품 물가 상승률이 7%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에서는 내년 1월 도입 예정인 탄소 국경 조정세 시행 연기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테일러는 “정부가 지금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다음 위기를 버텨낼 만큼 회복력 있는 식품 시스템을 마침내 구축할 것인지가 더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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