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시나리오의 핵심 근거가 공식적으로 ‘비현실적’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지난 15년간 기후 정책과 언론 보도의 뼈대를 이뤄온 이른바 ‘RCP8.5’ 시나리오를 “불가능한 미래를 묘사한 것”으로 인정했다. 과학계 일각에서 오랫동안 문제를 제기해 왔던 이 시나리오가 공식 기구의 입으로 부정된 셈이다.
RCP8.5는 온실가스 고배출이 아무런 규제 없이 지속될 경우를 가정한 ‘최악의 기준선’ 시나리오다. 이 가정을 기후 모델에 입력하면 2100년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 약 4도의 온도 상승이 예측된다. 80년 안에 3도 가까이 오르는 수치다.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는 이 숫자를 정책 수립의 근거로 삼았고, 주류 언론은 이를 토대로 수만 건의 보도를 쏟아냈다. 학술지 구글 스칼라 기준으로 2018년부터 2021년 사이 RCP8.5를 활용한 논문은 1만 7천 건에 달했으며, 이후 3년간에도 거의 같은 수준인 1만 6,900건이 게재됐다.
콜로라도대학교 볼더 캠퍼스의 과학정책 연구자 로저 피엘키 주니어는 이번 인정을 두고 “수십 년 만에 기후 연구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 평가했다. 그는 IPCC의 미래 기후 시나리오 개발을 담당하는 공식 기구가 직접 해당 시나리오들이 비현실적임을 인정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시나리오들은 두 차례에 걸친 IPCC 평가 보고서 주기 동안 기후 연구와 정책 결정의 중심축을 담당해 왔다.
IPCC가 새롭게 채택한 고배출 시나리오는 2100년까지 약 3도 상승을 예측한다. RCP8.5 대비 낮아진 수치이지만, 피엘키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이 역시 현재의 관측 추세와 비교할 때 상당히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RCP8.5의 핵심 가정 중 하나인 ‘2100년 석탄 사용량이 현재 추정 가능한 가채매장량을 초과한다’는 내용은 물리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지난해 ‘과학 표준 복원‘ 행정명령을 통해 연방 소속 과학자들의 RCP8.5 사용을 금지했다. 행정명령은 “RCP8.5는 세기말 석탄 사용량이 가채매장량 추정치를 초과한다는 가정처럼 극히 비현실적인 전제에 기반한 최악의 시나리오이며, 이를 유력한 결과로 제시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 과학자들이 경고해 왔다”고 명시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이 행정명령이 “과학적 독립성을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만 명이 넘는 전문가들의 공개서한을 소개하며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한 기후과학자는 행정명령을 “불편한 과학을 모두 일축하기 위한 도구”라고 표현했다.
이번 공식 인정이 가져오는 파장은 단순히 학술 논쟁에 그치지 않는다. 해수면 상승을 둘러싼 과장 보도가 그 단면을 보여준다. 영국 BBC의 기자 마크 포인팅은 지난해 5월, 지구 기온이 0.3도만 올라도 수 미터의 해수면 상승이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 원본 논문이 제시한 고배출 시나리오 기준 2100년 해수면 상승 전망치는 12~52센티미터였다. 포인팅은 IPCC가 ‘낮은 신뢰도’를 전제로 “배제할 수 없다”고 언급한 2300년 기준 15미터 이상 상승 가능성을 기사 본문에 담아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RCP8.5를 둘러싼 논란은 기후과학의 신뢰성 문제와 맞닿아 있다. 관측 가능한 과거 데이터는 수억 년에 걸쳐 현재보다 훨씬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에서도 대기가 일정 수준 이상의 온도 상승을 억제하는 ‘포화 효과’를 보여왔다. 이런 배경에서 일부 연구자들은 이산화탄소 같은 미량 기체의 온난화 기여도가 현재 모델보다 과대평가됐을 가능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이번 IPCC의 입장 변화는 이 같은 비판이 단순한 회의론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검토할 가치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The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 a United Nations (UN) body tasked with informing global climate policies, has officially admitted that its so-called RCP8.5 climate scenario, used since 2011 to predict catastrophic climate outcomes, is “implausible.”…
— Eric C Butto Jr. (@Fishkat1) May 8, 2026
Pleased to see repudiation of climate scenario RCP 8.5 in President Trump’s recent executive order Restoring Gold Standard Science. https://t.co/v0LHwvrtzy pic.twitter.com/VdA8TJCE71
— Ryan Maue (@RyanWeather) May 26,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