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모든 스마트폰 안에 콘텐츠 감시 기술을 심으라는 명령을 애플과 구글에 내렸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미성년자가 나체 사진을 촬영하거나 전송하거나 열람하지 못하도록 운영체제 수준에서 차단하는 기술을 신형과 구형 기기 모두에 탑재하라고 요구했다. 명분은 아동 보호다. 영국에서 2024년 접수된 아동 성착취물 신고의 91%가 어린이 스스로 생성한 콘텐츠를 포함한다는 통계가 그 근거로 제시됐다. 그러나 프라이버시 단체 빅 브라더 워치는 이 제안이 ‘전 국민 대상 기기 신원 확인 체계’의 전조라고 밝혔고, 암호화 메시지 서비스 시그널은 이 요구가 종단간 암호화를 사실상 무력화한다고 경고했다. 영국 정부는 이미 2025년 2월 수사권한법을 근거로 애플의 암호화된 iCloud 데이터 접근을 요구했고, 애플은 결국 영국 시장에서 고급 데이터 보호 기능 전체를 철수했다. 아동을 지킨다는 목표를 담은 기술이 전 세계 사용자를 동시에 감시하는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영국의 요구는 돌발적이지 않다. 배후에 국제 기구들의 선행 작업이 촘촘하게 깔려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20년 3월 안면인식 기술의 ‘책임 있는 활용’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공항 여객 흐름 관리를 핵심 활용 사례로 제시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코로나 팬데믹 환경에서 비접촉식 안면인식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며 인증 프레임워크 2부를 공개했다. 인터폴과 유엔 산하 범죄법무연구소(UNICRI), 네덜란드 경찰은 2019년 이미 법집행 분야의 안면인식 거버넌스 체계 수립에 착수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2019년 6월 안면인식 기반 디지털 신원 시스템 ‘One ID’를 전 세계 공항에 확산하기로 결의했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는 SIM 개통과 생체 인증의 결합을 글로벌 표준으로 밀어붙였다. 여기에 WHO와 유엔은 2020년 2월 130개국 장관급 대표단이 서명한 스톡홀름 선언을 통해 도시 내 차량 속도를 30km로 제한하는 캠페인을 공식화했다. 각국 정부는 이 프레임워크에서 자국 상황에 맞는 명분을 골라 채택했다. 아동 보호, 성범죄 근절, 교통 안전, 금융 사기 방지. 명분은 달랐지만 방향은 하나였다.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정보동맹국인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가 거의 같은 시기에 소셜미디어 연령 제한과 온라인 콘텐츠 규제 입법을 추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수십 년간 군사 정보와 사이버 안보 정책에서 치밀하게 공조해 온 이 동맹이 아동 보호를 명분으로 한 디지털 규제에서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사실은 이 움직임의 성격을 가늠하는 단서가 된다. 콘텐츠 스캐닝, 연령 확인, 안면인식, SIM 생체 등록이 포함된 디지털 ID. 제안된 유형은 다양하지만 각각의 방향이 연결되면 하나의 구조를 이룬다. 카메라가 스마트폰에 들어오고, 얼굴이 신분증에 묶이고, 신분증이 이동과 구독과 금융에 연결되는 체계다.
공론화가 저항을 낳은 사례도 있다. 2021년 8월 애플은 아이폰과 iCloud에 저장된 사진을 아동 성착취물 데이터베이스와 자동 대조하는 스캐닝 시스템을 발표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전자프런티어재단(EFF), 민주주의기술센터(CDT)를 포함한 전 세계 90개 이상의 시민 및 인권 단체들이 팀 쿡 대표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 기술은 아동 성착취물 탐지에 그치지 않고 인권 활동가, 언론인, 정치적 반대자를 색출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단체들은 경고했다. 애플은 가을에 계획을 보류했고 2022년 12월에 공식 철회를 선언했다. 그러나 철회는 포기가 아니었다. 기업의 자발적 도입이 실패하자, 이번에는 국가의 법적 강제라는 수단이 등장했다. 이번에 영국 정부가 애플에 요구하는 기기 내장 스캐닝은 2021년 애플이 제안했다가 반발로 물러선 바로 그 개념이다.
시간이 관철의 도구가 되는 패턴이 뚜렷하다. 영국의 온라인 안전법은 2023년 제정 이후 단계적으로 발효됐다. 2025년 3월부터 불법 콘텐츠 대응 규정이 시행됐고, 7월부터는 포르노, 자해, 섭식장애 관련 콘텐츠에 대한 연령 확인이 의무화됐다. 나이를 확인하려면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 신원을 확인하면 기록이 남는다. 연령 확인 인프라를 먼저 깔고, 그 위에 콘텐츠 스캐닝 요건을 얹는 순서다. 유럽에서는 아동 보호를 위한 연령 확인 앱이 출시된 지 이틀 만에 해킹됐다는 보고가 나왔고, 신원 인증 시스템과 연동된 신분증과 셀피 사진 7만 건 이상이 유출된 사고도 발생했다. 아이들을 지키려고 만든 시스템이 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사용자의 데이터를 더 위험한 곳에 노출시켰다.
한국에서도 같은 시기에 유사한 기술 인프라가 공론화 없이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텔레그램을 통한 대규모 성착취물 유포 사건, 이른바 ‘n번방 사건’으로 사회적 분노가 극에 달하자 디지털 성범죄 대응 강화를 명분으로 내밀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2019년 웹하드를 대상으로 AI 기반 불법촬영물 탐지 시스템을 개발해 실제 업무에 탑재했으며, 2021년에는 탐지 범위를 일반 인터넷 사이트 전반으로 넓히는 데 성공해 시험 적용에 들어갔다. AI가 등록된 키워드를 기반으로 웹페이지를 자동 검색하고 텍스트와 이미지를 분석해 유해성을 판단하는 방식으로, ETRI는 99.4퍼센트 이상의 정확도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이 시스템이 확장된 시점은 WEF, 인터폴, UNICRI가 법집행 안면인식 프레임워크 착수를 선언한 2019년과 WEF가 코로나 환경에서 비접촉 안면인식 표준화를 공식화한 2020년과 정확히 겹친다. n번방의 격렬한 분노 속에서 기술에 대한 공개 토론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았고 언론도 침묵했다.
더 직접적인 사례가 같은 시기에 수면 아래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법무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협력해 2019년부터 ‘인공지능 식별추적 시스템 구축 사업’을 추진했다. 민간 참여 기업들이 알고리즘을 학습시키는 데 활용한 데이터는 법무부가 출입국 심사 과정에서 수집한 내국인 5,760만 건과 외국인 1억 2,000만 건의 안면 이미지였다. 당사자에게 아무런 동의도 받지 않았다. 이 사업이 착수된 2019년은 WEF가 인터폴, UNICRI, 네덜란드 경찰과 협력해 정부 안면인식 거버넌스 체계 수립에 나선 해이며, IATA가 공항 안면인식 One ID 확산을 결의한 해이기도 하다. 2021년 10월 언론 보도로 드러나자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했고, 2022년 4월 법무부에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시민사회는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사업이 종료되고 데이터가 파기됐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단체들은 “알고리즘만 남기고 데이터와 처리 기록을 모두 파기해 불투명하게 처리한 국가 행위가 헌법적 판단조차 받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시민을 속인다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사이에 1억 7천만 건의 얼굴이 민간에 넘겨겼다.
물리적 이동의 자유도 같은 방식으로 다뤄졌다. 2019년 9월 충청남도 아산의 어린이보호구역 횡단보도에서 9살 어린이가 안전 설비가 전혀 없는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국회는 아이의 이름을 빌려 같은 해 12월 법안을 통과시켰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차량 속도 제한과 단속 카메라 설치 의무화, 사고 운전자에 대한 가중 처벌을 담은 ‘민식이법’은 2020년 3월 시행됐다. 두 달 뒤인 2020년 2월, WHO가 공동 주최한 제3차 유엔 세계 도로 안전 각료회의가 스톡홀름에서 열렸다. 130개국 장관급 대표단 1,700여 명이 참가한 이 회의는 보행자와 차량이 혼재하는 도시 구역 전체에서 최고 속도를 30km로 제한하는 것을 전 세계 표준으로 삼겠다는 스톡홀름 선언을 채택했다. 이어 2021년 유엔 세계 도로 안전 주간은 도시 내 30km 제한을 각국 정책 입안자에게 정식 의제로 요구했다. 한국에서 한 아이의 죽음이 감정적 배경을 제공했다면, 국제사회에서는 WHO와 유엔의 메시지가 정책 근거로 작동하고 있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이재명 정부에서 나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5년 12월 휴대전화 개통 시 신분증 사진과 실시간 얼굴을 대조하는 안면인증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명분은 대포폰 근절이다. 2025년 11월까지의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사상 처음 1조 원을 넘어섰다는 수치가 뒷받침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발표 일주일 만에 국회 전자청원에 4만 2천 명 이상이 서명했다. 인권위는 법적 근거가 미흡하다며 재검토를 권고했고,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정부는 2026년 3월 23일 예정된 정식 시행을 7월 이후로 미뤘다. 철회가 아니라 연기다. 이 구상은 GSMA가 전 세계 표준으로 밀어붙이는 생체 SIM 등록의 한국판이다. IATA 역시 같은 시기에 공항 생체 신원 시스템 확산을 추진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가나, 말라위가 같은 시기에 같은 시스템을 같은 명분으로 도입했다. 나라마다 내세운 이름이 다르다고 해도 도입의 방향과 기술적 구조는 동일하다.
아동 보호, 성범죄 근절, 교통 안전, 금융 사기 방지 등의 명분은 각각 따로 보면 반박하기 어렵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같은 시기에, 같은 국제 기구들의 권고를 바탕으로, 같은 기술적 방향을 향해 동시에 움직인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만든다. 어디서 공론화가 있었는가. 어디서 시민에게 동의를 구했는가. 한국의 n번방 분노, 민식이의 죽음, 급증하는 보이스피싱 피해는 모두 실재하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 감정적 충격이 기술 도입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차단하는 역할을 했다. 서구에서는 90개 단체의 공개 반발이 애플의 스캐닝 계획을 막아냈다. 한국에서는 같은 시기에 같은 종류의 시스템이 논쟁 없이 정착했다. 저항이 성공한 곳에서도 철회가 아닌 연기였다. 카메라가 스마트폰에 들어오고, 얼굴이 신분증에 묶이고, 신분증이 이동과 구독과 금융에 연결되는 체계는 아이들 보호라는 이름 아래 단계별로 조용히 완성되고 있다.
BREAKING: The UK is drafting a law to scan every photo, video and message on every phone in the country.
Tech CEOs who refuse to implement this could face up to 5 years in prison.
The proposal would force companies to build device level scanners that inspect content before… pic.twitter.com/cDWVSIxxlW
— Bull Theory (@BullTheoryio) June 11, 2026
Here are headlines from the UK, Canada, New Zealand, and Australia.
Simultaneously, they all want a social media ban. “To protect the children”.
Our governments aren’t calling the shots; they’re following orders.
This is just one example. Every law passed happens in the… pic.twitter.com/clWzVvlrfa
— Mike McMullen 🇮🇪 🇨🇦 (@truthtrain101) June 11,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