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학습을 위한 앤스로픽의 도서 파쇄와 새로운 소송

인공지능 학습을 위한 앤스로픽의 도서 파쇄와 새로운 소송

앤스로픽을 둘러싼 저작권 관련 법적 다툼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두 건의 문서는 이 회사가 인공지능 모델 클로드를 훈련시키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텍스트 자료를 확보해왔는지를 보여준다. 하나는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의 공정 이용 판결문에 담긴 내용으로, 앤스로픽이 수백만 권의 실물 도서를 구매한 뒤 제본을 해체하고 스캔하여 디지털 파일로 만들고 원본은 폐기한 사실을 담고 있다. 다른 하나는 백 명이 넘는 작가들이 앤스로픽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이다.

 

2024년 2월, 앤스로픽은 구글의 도서 스캔 프로젝트에서 파트너십 총괄을 맡았던 톰 터베이를 영입하고 그에게 ‘세상의 모든 책’을 확보하라는 임무를 맡겼다. 구글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비파괴적 카메라 방식으로 스캔한 뒤 돌려준 것과 달리, 앤스로픽은 실물 도서를 대량으로 구매한 뒤 제본을 해체하고 페이지를 스캔해 디지털 파일로 만들고 원본은 폐기하는 방식을 택했다. 최고경영자 다리오 아모데이는 출판사와의 복잡한 라이선스 협상을 법적, 실무적, 사업적 번거로움이라고 표현하며 이를 피하려고 했다. 앤스로픽은 처음에 저작권 침해 도서 파일을 대량으로 수집했으나, 2024년 들어 법적 위험 때문에 방향을 바꿔 실물 도서를 사들인 뒤 파괴하며 스캔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윌리엄 앨섭 판사는 이 파괴적 스캔 작업이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다만 그 근거는 앤스로픽이 도서를 합법적으로 구매했고, 스캔이 끝난 뒤 실물을 폐기했으며, 디지털 파일을 외부에 배포하지 않고 내부적으로만 보관했다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판사는 이 과정을 공간을 절약하기 위한 형식 변환에 비유하며 변형적 이용으로 인정했다. 앤스로픽이 처음부터 이런 방식을 따랐다면 인공지능 분야에서 최초로 법적으로 인정받은 공정 이용 사례가 되었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이전에 벌어진 저작물 무단 사용 이력은 여전히 회사의 입지를 흔들고 있다.

 

이런 자료 확보 경쟁은 앤스로픽에 국한되지 않는다. 저자들이 메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과정에서 공개된 내부 문서에 따르면, 메타는 라이브러리 제네시스 등 이른바 그림자 서고에서 최소 81.7테라바이트에 달하는 해적판 서적을 토렌트 방식으로 내려받아 라마 인공지능 모델 학습에 사용했다. 내부 직원들은 이런 방식이 불법이라는 경고를 여러 차례 냈고, 한 엔지니어는 회사 소유 노트북으로 토렌트를 받는 것이 꺼림칙하다는 취지의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소송 서류에 따르면, 이런 논의가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에게까지 보고되었으나 저커버그는 최종적으로 불법 자료의 사용을 승인했다.

 

오픈AI도 유사한 방식을 취했다가 내부 고발에 직면했다. 이 회사에서 4년 가까이 일한 핵심 연구원 수치르 발라지는 2024년 8월 자진 퇴사한 직후, 오픈AI가 챗GPT를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저작권을 침해한 사실을 폭로하며 뉴욕타임스 등이 제기한 소송에서 증언할 뜻을 밝혔다. 그러나 발라지는 2024년 11월 26일 샌프란시스코 자택에서 머리에 총에 맞고 숨진 채로 발견되었고, 경찰과 검시관은 자살로 결론지었다. 그의 부모는 이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며 타살 의혹을 제기했고, 최근에는 아파트 관리 업체를 상대로 증거 조작과 은폐 의혹을 담은 소송까지 제기했다.

 

이와는 별개로 지난 6월 17일, 백 명이 넘는 작가들이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 앤스로픽을 상대로 7천5백만 달러(약 1,035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은 앤스로픽이 티파니 알리시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겟 굿 위드 머니’와 멕시코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국제적 베스트셀러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포함해 5백 권이 넘는 저작권 침해 도서를 인공지능 학습에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원고에는 아타리 공동창업자 놀란 부시넬,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각본가 재커리 스클라, 뉴베리상 수상 작가 도나 바르바 이게라 등이 포함되어 있다.

 

소장에 따르면 앤스로픽은 비트토렌트라는 파일 공유 프로그램을 이용해 불법 사이트인 라이브러리 제네시스와 파이럿 라이브러리 미러에서 수백만 권의 무단 복제 도서를 내려받고, 이를 회사의 ‘거대한 중앙 서고’에 업로드해 인공지능 학습에 활용했다. 작가들은 침해된 저작물 한 건당 15만 달러(약 2억 원)를 배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번 소송에 참여한 작가들은 지난 9월 15억 달러(약 2조 700억원) 규모로 타결된 앤스로픽의 이전 집단소송에서 빠지는 쪽을 선택했던 이들로, 당시 합의에서는 작가 한 명당 침해 저작물 한 건에 약 3천 달러(약 414만 원)가 지급되었다.

 

이런 흐름은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6년 1월 22일부터 시행된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은 산업 진흥과 최소 규제를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으며, 저작권자의 사전 동의를 요구하는 조항은 담고 있지 않다. 같은 해 2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발간한 생성형 인공지능의 저작물 학습에 대한 저작권법상 공정이용 안내서 역시 법적 구속력이 없는 참고 자료일 뿐이며, 실제 침해 여부는 법원이 개별 사건마다 판단하도록 남겨두었다. 정부는 이와 별도로 공공저작물을 저작권 분쟁 없이 인공지능 학습에 개방하고, 학습 데이터 구매 비용에 세액공제를 적용하는 등 데이터 확보의 마찰과 비용을 줄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2026년 인공지능 예산은 전년 대비 세 배 넘게 늘어난 10조 1천억 원에 이른다.

 

한국에서 창작자의 사전 동의나 협상을 의무화하는 절차는 이런 논의에서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웹툰 작가들이 동의 없는 학습에 반발해 보이콧에 나서거나, 한 시민이 정부 입법예고 의견란에 동의 없는 저작물 학습 자체가 침해라는 의견을 올리는 등의 문제 제기는 존재하지만, 이런 목소리가 정책 결정 과정에 실질적으로 반영된 흔적이 확인되지 않는다. 앤스로픽과 메타, 오픈AI가 실물 도서 파쇄와 토렌트 다운로드로 소송에 휘말린 사례가 국내 정책 문서나 국회 논의에서 반면교사로 인용된 경우도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지금의 논의는 저작권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보다, 이미 확보한 데이터를 법적으로 어떻게 방어할지에 무게가 실려 있다.

 

 

 

 

 

Share this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