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의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 팟캐스트 ‘메디컬 에식스 언팩드’에 출연한 뉴욕대학교 의료윤리학자 아서 캐플런 교수가 뇌사 판정을 받은 환자들이 생명 유지 장치에 연결된 채 신약과 인공 장기 시험에 동원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시설이 뉴욕대학교에 이미 가동되고 있으며 전국 각지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논란이 되고 있는 발언은 그의 은퇴를 하루 앞두고 나왔다.
‘네오모트’는 뇌사 판정을 받고도 생명 유지 장치로 신체 기능이 유지되는 환자를, ‘바이오엠포리엄’은 이런 환자들을 수용하는 병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캐플런이 쓴 이 두 용어는 그가 직접 만든 말이 아니다. 그는 정신과 의사 윌러드 게일린이 1974년 하퍼스 매거진에 기고한 ‘죽은 자를 수확하다’라는 글에서 이 표현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게일린은 뇌사라는 개념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윤리적 위험을 경고하려고 이 글을 썼다.
캐플런이 학생 시절 읽었다는 이 글에서 게일린은 의대생이 청진과 타진, 안저 검사, 직장과 질 검진 같은 훈련을 신경학적으로 손상된 환자의 몸으로 익힐 수 있다고 썼다. 당시 수감자나 지적 장애 아동, 자원자에게 시행하던 약물과 수술 시험도 이들에게 넘길 수 있다고 적었고, 암이나 바이러스 감염을 인위적으로 유발한 뒤 치료법을 검증하는 실험까지 상상했다.
캐플런은 게일린의 글이 경고이자 풍자였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가 이런 일이 벌어질까 걱정했다고 해서 그 발상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발상을 40년 뒤 실제로 실행에 옮겼다며, 뉴욕대학교에 이미 이런 시설이 한두 곳 가동되고 있고 전국에서 비슷한 프로그램 수십 개가 빠르게 새로 만들어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캐플런이 설명한 절차는 이렇다. 장기 기증을 등록했지만 감염 등의 이유로 이식이 불가능하다고 판정된 환자의 가족에게 연구팀이 접근한다. 인공 장기나 면역억제제 실험처럼 이식 의학 발전에 기여한다는 명분을 앞세우고, 법적으로는 장기 기증과 달리 가족 동의가 필수가 아님에도 안전을 기하는 차원에서 72시간 동안 환자의 몸을 연구에 쓸 수 있는지 묻는다. 캐플런은 상당수 가족이 이에 응했다고 전했다. 가족에게 제시되는 설명은 이처럼 “연구에 쓴다”는 포괄적인 수준에 그치며, 유전자를 조작한 동물 장기를 이식한다는 식의 구체적인 내용은 그의 말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캐플런은 이 논의를 뇌사자에 국한하지 않았다. 그는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 환자도 이 논의 대상에 포함할 수 있다고 강조했고, 이런 결정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같은 문서에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실험에 동의한 가족이 재산 정리나 장례 절차 때문에 경제적으로 곤란해지지 않도록, 몸이 연구에 쓰이는 동안에 생명보험금이 지급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가 언급한 실제 사례는 이보다 구체적이다. 뉴욕대학교 랭곤 이식연구소는 2021년부터 뇌사 판정을 받은 환자의 몸에 유전자를 조작한 돼지 신장과 심장을 이식하는 실험을 여러 차례 진행했고, 그 결과는 국제 학술지에 발표됐다. 2023년에는 모리스 밀러라는 남성의 몸에 이식된 돼지 신장이 한 달 넘게 기능을 유지한 사례가 공개되기도 했다.
캐플런은 이 환자들이 생물학적으로 죽은 상태가 아니라는 점도 인정했다. 그는 뇌사가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합의된 판정이라고 규정하면서도, 뇌의 통합적 기능이 완전히 멈춘 상태라는 정의 자체는 여전히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히 맥매스를 인공호흡기에 계속 연결해 둔 것을 두고 지금도 법적으로는 ‘시신 학대’라고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표현을 쓰면서도 그는 네오모트 실험에 가족의 동의를 구할 때는 ‘이식 의학 발전에 기여하는 일’이라거나 ‘가족이 원래 원했던 것’이라는 말로 설득한다고 밝혔다.
이 논쟁은 최근 과학계 일각에서 제기된 ‘바디오이드’, 곧 인공 자궁에서 배양한 무의식 인간 복제체 구상과도 맞물린다. 바디오이드는 아직 구상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뇌사 판정을 받은 실제 인간의 몸을 이용한 실험은 이미 현실에서 진행되고 있다. 게일린은 1974년 글에서 이런 실험의 의학적 이익이 아무리 명확해도 그 대가로 치르는 존엄성의 손실을 같은 저울 위에 올려 계산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캐플런 스스로 말했듯, 그 경고가 반세기 만에 현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