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미플루, 20년 만의 첫 무작위 시험에서 ‘위중증 환자 사망 위험 2배’

타미플루, 20년 만의 첫 무작위 시험에서 ‘위중증 환자 사망 위험 2배’

인플루엔자 치료제 타미플루(성분명 오셀타미비르)가 위중증 환자에게 오히려 사망 위험을 높인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나왔다. 이 약이 전 세계 병원에서 표준 치료제로 쓰이기 시작한 지 20여 년 만에 처음 이뤄진 무작위 대조 시험이다.

 

호주, 캐나다, 영국 등 20여 개국 250여 개 병원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 REMAP-CAP 시험은 2020년 3월부터 2026년 3월까지 6년에 걸쳐 인플루엔자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 442명을 세 그룹으로 나눠 비교했다. 항바이러스제를 전혀 투여받지 않은 124명 중에서는 90일 이내 17명(13.7%)이 숨졌다. 반면 타미플루를 5일간 투여받은 162명 중에서는 32명(19.8%)이, 10일간 투여받은 156명 중에서는 30명(19.4%)이 사망했다. 약을 먹지 않은 환자군의 사망률이 가장 낮았다는 의미이다.

 

연구진이 다른 조건을 보정해 계산한 결과, 타미플루를 투여받은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사망 위험이 약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5일 투여군 위험비 2.13배, 10일 투여군 2.17배). 이 결과가 우연이 아니라 실제로 해로울 가능성은 각각 98.0%와 98.2%로 계산됐다. 통계적으로 거의 확실한 수준의 위해 신호라는 뜻이다. 시험을 설계할 때부터 정해둔 기준에 이 수치가 도달하자, 연구진은 예정보다 일찍 환자 모집을 중단했다.

 

타미플루는 1990년대 말 개발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세포 밖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는 원리로 작동한다. 증상을 줄이고 나아가 중증 합병증과 사망까지 막아줄 것이라는 기대 속에 각국 정부는 이 약을 대량으로 비축했다.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당시에는 전 세계 판매액이 30억 달러를 넘었고,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약을 필수의약품 목록에 올렸다. 제조사 로슈는 1999년 출시 이후 이 약으로 18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영국은 7억1,000만 달러를 들여 4천만 회분을 비축했고, 미국은 13억 달러를 들여 6,500만 회분을 사들였다. 그러나 이 약의 효과를 뒷받침하는 임상시험 자료 상당수는 로슈가 공개하지 않은 상태였다.

 

국제 연구 네트워크 코크란(Cochrane)의 연구자들이 로슈가 처음 공개한 자료만으로 분석했을 때는 타미플루가 합병증과 증상을 모두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론에 처음 의문을 제기한 것은 2009년 일본의 한 소아과 의사였다. 그는 코크란의 결론이 자체 데이터 분석이 아니라 다른 연구자의 메타분석을 인용한 것에 불과하며, 그 메타분석이 근거로 삼은 임상시험 10건 중 정식 동료심사를 거쳐 논문으로 발표된 것이 단 2건뿐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나머지는 학회 발표 자료나 초록, 또는 로슈 내부 문서로만 존재했다.

 

이 문제 제기를 계기로 코크란은 전체 임상시험 자료 확보에 나섰지만, 로슈의 거부로 실제 자료를 2013년에 넘겨받기까지 4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코크란이 WHO, 미국 식품의약국(FDA),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유럽의약품청(EMA)에 자료 제공을 문의했을 때, 이들 규제기관 중 어느 곳도 타미플루의 전체 임상시험 자료를 갖고 있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즉 각국 정부와 WHO가 이 약의 대량 비축을 결정할 당시, 그 결정을 내린 기관들조차 완전한 근거 자료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2014년 4월 코크란이 로슈로부터 넘겨받은 전체 자료를 바탕으로 내놓은 개정판 분석 결과는 제약사의 초기 발표와 달랐다. 타미플루는 증상 지속 기간을 하루도 채 줄이지 못했고, 입원율을 낮추지도 못했으며, 중증 합병증 예방 효과에 대한 근거는 신뢰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오히려 이전까지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던 신경정신계 이상반응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무렵 타미플루는 이미 병원 진료 현장에 깊숙이 자리 잡은 뒤였다. 특히 2013년 로슈가 자금을 지원한 한 대규모 관찰연구는 위중증 성인 환자에게서 오히려 타미플루가 사망률을 낮춘다고 결론 내리며 이런 흐름에 힘을 실었다. 이런 상황에서, 위중증 환자에게 약을 투여하지 않는 대조군을 두고 시험하는 것 자체가 “이미 표준 치료로 굳어진 약을 일부 환자에게 주지 않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반론에 부딪혔다.

 

REMAP-CAP 시험에서도 일부 병원은 같은 이유로 무투여군 배정을 거부했다. 그럼에도 시험은 진행됐고, 결과는 무투여군의 사망률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3년 관찰연구를 포함해 그동안 타미플루 투여와 생존율 향상을 연관 지어온 여러 관찰연구 결과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연구진은 기존 관찰연구들이 환자군 간의 차이를 충분히 통제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2010년 BMJ와 탐사보도매체 인베스티게이티브저널리즘뷰로(Bureau of Investigative Journalism)의 공동조사는 WHO가 신종플루 대응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음모론“으로 일축해 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해 1월 유럽평의회 소속 일부 의원들이 WHO와 제약업계의 유착 의혹을 제기하자, WHO의 케이지 후쿠다 사무총장 특별보좌관은 이를 “과학적으로 틀렸고 역사적으로 부정확하다”고 반박했고, WHO는 별도 성명에서 이런 문제 제기를 “무책임하다”고 꾸짖었다.

 

REMAP-CAP 시험 결과가 알려지자 호주에서는 즉각적인 대응이 이뤄졌다. REMAP-CAP 호주 연구진은 지난 3월 결과를 확인한 직후 호주 최고의료책임자에게 이를 통보했고, 논의를 거쳐 호주 전역 중환자실에 위중증 인플루엔자 환자에 대한 타미플루 사용을 잠정 중단하도록 권고했다. 이 결과는 지난 6월 10일 벨파스트에서 열린 국제 중환자의학 학술대회에서 공식 발표됐다.

 

지난 7월에는 정식 학술지 게재 전 단계인 프리프린트 논문으로 최종 공개됐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의료 자원과 관심이 코로나 대응에 집중되면서 인플루엔자 환자 모집이 더뎌졌고, 이 때문에 시험은 6년이라는 이례적으로 긴 시간이 걸린 뒤에야 결론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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