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화탄소가 늘자 아프리카 사바나의 풀이 더 자랐다

이산화탄소가 늘자 아프리카 사바나의 풀이 더 자랐다

남아공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자라는 풀이 지난 32년 동안 순전히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만으로 28% 더 많이 자란 것으로 나타났다. 셰필드대의 킴벌리 심슨과 예일대의 칼라 스테이버가 이끄는 국제 연구진이 네이처에 발표한 이번 논문은 70건의 실험 재분석과 크루거 국립공원의 32년치 현장 관측 데이터를 결합해, 특정 유형의 풀은 이산화탄소 증가에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는 그동안의 통념을 뒤집었다.

 

여기서 말하는 특정 유형의 풀이란 식물학에서 C4 식물로 분류되는 종들이다. 옥수수, 사탕수수, 열대와 아열대 초지를 뒤덮은 야생 풀의 대부분이 여기 속한다. 일반적인 식물, 즉 C3 식물은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곧바로 흡수해 광합성에 쓰지만, C4 식물은 잎 안에 별도의 장치를 두어 이산화탄소를 한 번 농축한 후 사용한다. 이산화탄소가 늘어나면 식물이 마치 비료를 받은 것처럼 더 잘 자라는 현상이 있는데, C4 식물은 원래도 이산화탄소를 효율적으로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이 효과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오랜 정설이었다. 실제로 관개가 충분한 옥수수 밭에서는 이산화탄소를 인위적으로 높여도 수확량이 거의 늘지 않는다는 실험 결과들이 이 정설을 뒷받침해 왔다.

 

문제는 이 정설이 옥수수 같은 재배 작물을 넘어, 지구 육지 면적의 20%를 덮고 전체 식물 생산량의 30%를 담당하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야생 사바나 초지 전체에도 그대로 적용돼 왔다는 점이다. 열대우림의 나무들이 이산화탄소 증가로 더 빨리 자란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됐지만, 사바나 풀은 이 성장 촉진 효과에서 예외로 취급돼 왔고 그만큼 장기 연구도 드물었다.

 

연구진은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두 갈래로 접근했다. 82종의 야생 C4 풀을 대상으로 한 70건의 기존 실험에서 나온 655쌍의 데이터를 다시 통계적으로 종합했고, 별도로 크루거 국립공원의 533개 조사구에서 1989년부터 2021년까지 해마다 측정된 풀 바이오매스 기록을 분석했다. 실험실 결과와 야외 현장 결과가 서로 같은 결론을 가리키는지 교차 검증하려는 설계였다.

 

실험 재분석 결과, 이산화탄소로 인한 성장 촉진 효과는 물이 부족한 조건에서만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 작동 방식은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잎이 탄소를 더 많이 빨아들이는 방식이 아니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으면 식물은 잎 표면의 작은 숨구멍인 기공을 평소보다 덜 열고도 필요한 탄소를 확보할 수 있다. 그만큼 수분 손실이 줄어들어, 가뭄이 들어도 잎 속 수분 상태를 더 오래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 물이 충분히 공급된 조건에서는 이런 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이 패턴은 크루거 국립공원의 실측 데이터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연구진은 풀 증가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요인들을 하나씩 검토해 배제했다. 강우량, 강우 일수, 기온 변화, 초식동물 밀도 증가, 화석연료 연소에서 비롯된 질소 오염까지 모두 후보에 올랐다. 질소 오염 가설은 표본의 화학 성분 분석으로 반박됐고, 초식동물 밀도는 오히려 관찰 기간 동안 늘어났으므로 방목 압력만으로는 풀 증가를 설명할 수 없었다. 이런 대안들을 걷어내고 남은 것은 32년 동안 65ppm 늘어난 대기 중 이산화탄소였다. 강우량이 적은 건조한 구역일수록 증가폭이 더 컸다는 사실 역시, 실험에서 확인된 물 부족 조건에서의 반응 패턴과 정확히 겹쳤다.

 

연구진은 이 흐름이 앞으로도 이어질지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 기후 모델을 이용한 예측도 진행했다. 미국 국립대기연구센터가 만든 지구 기후 모델 CLM5에 2100년까지의 이산화탄소 농도와 기온 상승 시나리오를 입력해, 사바나 풀이 앞으로 어떻게 자랄지 계산한 것이다. 그 결과 기온이 오를수록 풀의 성장 속도는 둔화됐지만, 이산화탄소로 인한 성장 촉진 효과 자체는 기온 상승으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더워지는 날씨가 어느 정도 발목을 잡더라도, 이산화탄소로 인한 풀의 추가 성장은 금세기 내내 이어질 것으로 계산됐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2023년 한 연설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 쌓이면서 “땅에서 수분을 빨아들여 가뭄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산화탄소 증가를 곧 토양과 식생의 수분 손실, 가뭄 심화로 직결시키는 이 발언은 그동안 기후 담론에서 반복돼 온 프레임이다. 그러나 이번 논문이 보여준 메커니즘은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식물은 기공을 덜 열고도 필요한 탄소를 확보할 수 있어 수분 손실이 오히려 줄고, 가뭄 중에도 잎의 수분 상태가 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미국의 기후특사를 지낸 존 케리도 2021년 백악관 주최 기후정상회의에서 넷제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직접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이산화탄소를 생태계에 아무런 긍정적 기능도 남기지 않는 오염물질로만 그리는 시각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같은 기체가 지구 육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사바나 초지에서는 가뭄 저항성을 높이고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구체적인 생태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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