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TASS 통신을 인용한 러시아 타임즈의 기사를 그대로 옮겨 보도합니다. 비극적인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분들과 가족, 친지들에게 큰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참고로 본 기사는 러시아측의 입장을 담고 있음을 주지하셨으면 합니다. – 컨스피러시뉴스
일본 외무성은 항공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건 중 하나인 1983년 9월 1일 대한항공 보잉 747-230B 기의 사할린 상공 격추 사건에 대한 외교문서를 30년 만에 기밀해제했다고 러시아의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일본의 외교관들은 비극이 벌어진 2달 후 미국의 한 고위 관리로부터 소련이 대한항공기를 미국의 정찰기로 오인하고 격추시킨 소식을 들었다.
신분이 확인되지 않은 이 미국 관리는 또한 미국 정부가 일종의 비밀 수단을 이용하여 격추된 여객기의 블랙박스를 찾고 회수하려 한다고 알렸으나, 소련이 미국보다 한 발 앞섰다.
수십 년간 미국과 국제 사회는 269명의 생명을 앗아간 비극이 소련 공군의 의도적인 행동이었다고 주장했었다.
70년대와 80년대의 일본 외교 문서들의 일부가 공개되면서 미국은 항상 한국의 불운한 항공기에 발생한 일을 알고 잇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고 당시의 뉴욕 타임즈 보도
1983년 9월 1일, 대한항공 KE007 기는 알라스카의 앵커리지를 경유하여 뉴욕에서 서울로 가는 경로로 비행을 하고 있었다.
앵커리지를 이륙한 후 보잉기는 서울로 경로를 유지했으나,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정상 경로에서 500킬로미터 벗어나 캄차카 반도와 사할린 상공을 비행하였다. 이곳은 소련연방의 여러 군사 기지와 비밀 시설들이 있는 곳이다.
KE007 기는 소련 상공을 보잉 RC-135 정찰기와 동시에 접근하고 있었으며, 어느 한 시점에 두 비행기가 레이더 상에 하나로 표시되기도 하였다. 이후 군사 레이더 상에 이 점 중 하나가 소련 영공에 들어섰다.
비행 내내, 대한항공의 보잉기는 항공등이 꺼진 상태였으며 국경을 넘은 비행기를 가로막기 위해 출격한 소련 수호기 su-15와의 교신을 거부하였다. 소련 전투기는 본래 대한항공기를 소련의 군용 비행장에 강제 착륙시키려고 했다.
대한항공기에 접근한 소련의 군 파일럿들은 수 킬로미터 거리에서 여객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날이 어두웠고 캄차카 상공의 제한된 지역을 신분 확인 없이 비행 중인 물체가 여객기일 것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일단 의심스러운 정찰기가 획득한 자료를 가지고 탈출한 상황이 명백해 지면서, 소련 파일럿들은 침입 항공기를 격추시키도록 명령받는다.
대한민국의 보잉기는 라페루스 해협으로 하강한다. 이 해협은 일본과 소련 모두에게 속한 모네론이라는 작은 섬 주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홋카이도 섬과 사할린을 가로지르는 지점이다.
이 비극은 소련과 미국, 그리고 더 크게는 국제 사회와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사건을 조사한 국제민간항공기구 (ICAO)는 대한민국의 파일럿들이 자동 비행장치를 잘못 설정해 놓은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소련은 격추된 여객기가 해당 지역의 공군 방어 시설들의 기술적 한계를 노출시키기 위해 제한된 지역 상공을 정찰 비행 중이었다고 항상 주장했었다.
1992년 6월 한국을 방문한 옐친 대통령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블랙박스를 전달하였다.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어려움이 많으실텐데 수고 하시고요 앞으로도 진실된 기사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방문자가 많아지면서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몰랐던 사실
알고나서 찝찝해지는 진실
산다는게 참…
악의 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