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봉쇄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에 대한 침묵의 음모

[칼럼] 봉쇄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에 대한 침묵의 음모

컨스피러시 뉴스입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전염병학자 수네트라 굽타 박사는 지난 팬데믹에서 정부가 선택한 방역 정책들을 평가하면서, 유행병 확산을 막기 위한 (학교) 봉쇄로 발생하는 학생 계층의 삶의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봉쇄는 효과적인 정책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녀는 다음 팬데믹에서 정부의 강압적인 확산 방지 노력보다는 취약층에 대한 보호에서 현실적인 답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굽타 박사의 조언을 이미 실천한 국가가 있습니다. 서방 언론의 비난과 공격을 받은 스웨덴이죠. 스웨덴의 코로나 수석 안드르스 텡넬 박사는 굽타 박사와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코로나가 고연령층의 기저질환자에게만 위험한 것이 초기 데이터에서부터 뚜렷하게 드러났다고 설명하죠.

 

그러나 세계보건기구와 정부는 다음 팬데믹에서도 모든 연령군 또는 계층에 대해 동일한 하나의 정책을 고집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굽타 박사가 텔레그래프에 기고한 이 글은 정부보다는 대중에게 주는 조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절대 팬데믹이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봉쇄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에 대한 침묵의 음모

 

어린이들에 대한 봉쇄의 결과에 대한 논의는 우리가 코로나 내러티브의 붕괴 단계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네트라 굽타

 

봉쇄가 특히 어린이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해를 끼쳤다는 점이 이제 널리 인정받고 있고, 새로운 연구는 유행병 동안 정책 입안자들이 젊은이들의 이익을 잊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제 이 상황에 대해 염려할 준비가 된 사람들은 또한 봉쇄가 피할 수 없었다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실제로, 어린이들에게 피해를 준 조치들을 채택하게 한 바로 그 근거의 비판에 대한 일반적인 주저함이 있다.

 

봉쇄 기간 동안 일부 전문가들이 이러한 조치들을 종식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들을 적대시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우려를 접어두고 그러한 재난이 재발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틀을 구축할 때이다.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건강한 어린이들에게 무시할 수 있는 수준임은 처음부터 명백했다. 따라서 감염으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없었다. 학교를 폐쇄하고,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의 어려움을 견디도록 강요하고, 예방접종을 하는 것은 지역사회 확산을 막는다는 측면에서 정당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조치들 중 어느 것도 감염 역학에 합리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봉쇄를 하되 학교는 열어두어야 한다는 교훈일까?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기대하겠지만, 젊은 성인들은 삶에서 연약한 시점에 중요한 경험을 빼앗기기 때문에 우리는 특히 고등 교육기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모든 필수 서비스 유지를 포함하여 봉쇄에 대한 모든 동정적인 배려를 제외한다면, 감염 확산을 막는 효과적인 정책보다는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집중적인 보호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병원체의 확산 차단에 타협점이 없기 때문이다. 전면적인 봉쇄와 방치 사이의 곡선은 완만한 경사가 아니다.

 

학교 봉쇄가 거의 개선을 보이지 않는 이유는 봉쇄가 궁극적으로 확산을 막는 매우 비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분명히 국경 폐쇄는 매우 특별한 상황에서 병원체가 지역사회로 나가거나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는 데 채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여기 와 있는 병원체를 갑자기 사라지게 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경험적 증거나 이론적인 이유는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많은 해를 끼친다고 믿을 만한 많은 이유들만 있었다.

 

코로나 정책이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는 위기가 처리된 방식에 대한 관점에서 ‘내러티브 붕괴’ 단계에 접어들고 있음을 확인해 준다. 하지만 학교를 봉쇄하지 않고 코로나 확산을 막는다는 것은 환상이라는 점이 여전히 받아들여질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해를 주는 일을 피하면서 봉쇄의 철학을 조화시킬 방법이 없다. 위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터무니없는 비용을 부과하지 않는,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집중적인 보호만이 유일하고 일관성 있는 전략이다.

 

나는 초기에 열심히 봉쇄하기 보다는 위험이 연령별로 매우 강하게 계층화되어 있고 특정 질병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깨닫자마자 그러한 정책을 시행했어야 했다고 본다. 코로나 위원회가 진심으로 젊은 세대의 곤경을 걱정한다면, 빠른 봉쇄가 옳은 방향이라는 생각에 빠지기 보다는 집중적인 보호를 즉시 도입하는 옵션을 고려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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