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들이 기후 히스테리를 이용해 노동계급을 선동하고 있다

엘리트들이 기후 히스테리를 이용해 노동계급을 선동하고 있다

컨스피러시 뉴스입니다.

 

기후변화를 내세워 농업을 포기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거리에 아이를 낳아서는 안 된다는 공익 광고가 등장했습니다. 지구온난화 및 기후변화 이론은 지구에 온난화가 발생하면서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죽어 가고 있으며 이 모든 책임이 인간의 활동 또는 인간의 존재 자체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9월에 서방의 주류 언론에는 기후변화 공포로 인해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고 있다는 세상과 동떨어진 주장이 처음 제기되었고, 이후 기후변화에 대한 공포가 젊은 세대를 지배한다는 주장을 우리의 머릿속에 심기 위한 전 세계적인 선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기후변화의 모든 책임이 인간에게 있다는 주장은 이제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담으로 우리를 압박하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록펠러 재단, 게이츠 재단 등의 거대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NGO)는 이러한 운동의 배후입니다. 유엔을 설립하고 실제로 유엔 본부가 위치한 부지를 제공한 록펠러 재단은 과거 ‘여성의 신체적 권리’를 내세워 낙태 운동을 벌였고 이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캐나다에서는 현재 ‘죽음을 선택할 권리’로 위장된 인구 감소를 목적으로 하는 조력 자살 프로그램이 정부를 통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는 사실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지구의 주기적인 변화인지 아니면 전적으로 인간의 활동 때문인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고, 글로벌 엘리트가 제시하는 탄소 배출 축소가 해결책이라는 주장에도 이견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학계를 힘으로 누르면서 전문가 다수가 이를 지지한다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는데, 우리는 지난 팬데믹의 백신 명령과 봉쇄 과정에서 그들이 내세운 학계 다수결의 논리를 목격한 일에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미국 채프먼 대학 도시학 회원이자 언론인 조엘 코친은 2021년 10월에 뉴스위크에 기고한 글에서 글로벌 엘리트가 제시한 기후 정책의 끝에 노동계층의 몰락이 있다고 경고하면서 현실적인 기후변화 정책의 모색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코친 씨가 말하지 않거나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하는 것은 대중의 궁핍화가 바로 이 모든 기후 선전의 주요 목표 중 하나라는 점입니다. 그들이 코로나 유행 동안 컴퓨터 모델링을 기초로 한 유사과학을 근거로 강요한 봉쇄는 지금까지도 우리의 삶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고 기후 선전과 동일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엔과 세계경제포럼이 제시하는 기후변화 정책 모델은 필수적으로 탈산업화를 유발하기 때문에 대표적인 산업국가인 한국은 이를 적극적으로 따르기 보다는 전 세계적 추이를 관찰하면서 현실적이고 수동적인 대응을 선택하는 지혜가 요구됩니다. 무엇보다 우리 대중은 이러한 기후 진실에 무지한 정치인들, 활동가들, 언론인들로 구성된 원죄론에 입각한 ‘기후 컬트’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록펠러 재단 출신의 모리스 스트롱은 1972년 지구의 날 유엔 스톡홀름 회의의 의장으로서 ‘환경보호’를 위해 전 세계 인구와 생활 수준을 낮출 것을 홍보했습니다. 그는 몇 년 후 말했습니다. “지구의 유일한 희망은 산업화된 문명의 붕괴가 아닐까요? 그렇게 하는 게 우리의 책임이 아닐까요?”

 

 

 


 

엘리트들이 기후 히스테리를 이용해 노동계급을 선동하고 있다

 

이번 주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정상 회의의 수사만큼 예측 가능한 일도 드물다. 다음 주 동안 우리는 지구가 죽어가고 있으며 기후변화로 인해 대규모 이주와 기아가 발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게 될 것이다. 유엔은 종말이 가까워졌으며 온실가스를 줄이는 참회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이 말을 들어왔으며, 각 국제회의마다 피할 수 없는 비난과 함께 “충분하지 않다”:라는 말과 함께 우리가 더 전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는 일부 진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다.

 

경제학자 비욘 론보그가 기후 종말론자라고 적절하게 불렀듯이, 기후 산업 복합체는 가뭄, 홍수, 허리케인, 폭우 등 거의 모든 기상 현상을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결 짓는 과장된 예측에 빠져들도록 언론을 설득해 왔다. 오바마 대통령의 과학 에너지 차관인 물리학자 스티브 쿠닌이 지적했듯이, 가장 널리 보도되는 예측은 석탄 사용량 증가 그리고 큰 기술적 개선 결여 등 가능성이 매우 낮은 최악의 시나리오만을 반영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기후 과학자들조차도 지속적이고 종종 근거가 부족한 종말론이 운동 자체의 신뢰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조용한 반전도 있었다. 더 극단적인 예측에 대해서는 유엔도 포기하거나 한발 물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대다수의 젊은 미국인들이 임박한 환경 재앙에 직면해 있다고 계속 믿고 있다. 그리고 캐나다의 심리학자들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높은 수준의 불안감을 발견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자식을 낳지 않기로 한 결정을 기후가 정당화한다고 생각하는데, 세상이 파국으로 끝날 것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듣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물론 기후변화는 현실이며 우리가 주목할 가치가 있고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후변화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절망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기후변화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미래 기후변화에 기꺼이 맞서려는 의지이다.

 

원자력 발전과 수력 발전부터 석탄을 풍부하고 깨끗한 천연가스 및 지열로 대체하는 일,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혁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옵션을 혼합하면 경제적, 사회적, 파국적 결과 없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특히 안정적이고 저렴한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어쨌든 인류가 생태 문제에 직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로마는 카일 하퍼의 저서 ‘로마의 운명‘이 밝혔듯이 대규모 기후변화와 물 부족을 겪었지만, 대도시에 물을 공급하고 제국의 중심지로 식량을 이동할 수 있는 도로를 건설하는 등 공학적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내가 입양한 캘리포니아는 역사적인 건조함을 극복하기 위해 거대한 수도 공사를 진행하여 미국의 기술 및 문화 중심지이자 미국 최고의 농업 생산지로 성장했다.

 

아마도 가장 좋은 모델은 16세기에 대홍수를 겪은 후 미래의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 해안 제방을 광범위하고 성공적으로 확장한 네덜란드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반면, 기후변화에 대한 예측 실패로 메소아메리카, 인더스강 유역, 캄보디아 문명은 파멸에 이르렀다. 최근 뉴올리언스는 적절한 대비가 부족하여 허리케인으로 큰 피해를 입었고, 오늘날 캘리포니아는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현재 인구의 절반을 위해 설계된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확장하지 않아 심각한 가뭄에 더 자주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개발도상국, 특히 중국이 계속해서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면 서방의 빠른 배출량 감축 시도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2010년 이후 중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25% 늘린 반면, 미국은 다른 어떤 대국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많이 줄였다. 중국은 이제 선진국 전체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공장을 계속 가동하기 위해 새로운 석탄 발전소를 건설함에 따라 유럽과 미국의 규제는 탄소 배출량이 많은 공급망과 오염된 도시로 악명 높은 중국으로 더 많은 생산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중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25개 대도시 중 23곳이 위치하고 있고, 오늘날 캘리포니아는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현재 인구의 절반을 위해 설계된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확장하지 않아 심각한 가뭄을 더 자주 겪게 된다.

 

서구의 탈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기후 운동은 상황을 훨씬 더 악화시켰다. 태양광 패널과 ‘청정’ 전기 및 전기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필수 금속 생산에 우위를 점하고 있는 중국은 아이러니하게도 여기 미국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 조건에서 생산하고 있다.

 

서구 엘리트들과 달리 중국의 전략은 죄책감이 아닌 이기심에 의해 형성된다. 최근 에너지 공급이 부족해져 중국의 산업적 우위가 위협받자 중국은 기후 정책을 완화하고 더 많은 석탄을 생산할 1,000개 이상의 석탄 발전소를 추가하여 ‘더 나은 재건'(building back better)을 시작했다. 시진핑과 그의 측근인 블라디미르 푸틴은 기후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지만, 학계와 언론의 찬사를 받는 것보다 일반 경제의 개선을 우선시하고 있다. 기후 소통에 대한 통제가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니 안심해도 좋다. 오히려 구글과 기타 과두 정치인들이 진보주의자들의 부추김을 받아 중국에서 국가가 하는 것처럼 논의를 통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구의 화석연료 포기의 또 다른 수혜자인 중국이나 러시아와는 달리, 민주주의자들과 (조지 소로스의) ‘오픈 소사이어티‘ 사람들은 여전히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며 때로는 정부에 맞서 싸우고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프랑스, 앨버타, 온타리오는 물론 좌파 성향의 워싱턴과 콜로라도를 포함한 많은 주에서 유권자들이 탄소세와 석유 시추 금지 등을 거부한 반란을 촉발시켰다. 전반적으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그린 뉴딜의 여러 근본적인 측면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이며, 그린 뉴딜의 제안을 지지하기 위해 많은 금액을 지출하기를 꺼린다.

 

일부 친환경주의자들에게 현재 미국, 중국, 유럽을 괴롭히고 있는 에너지 부족은 영광스러운 넷 제로 배출 시대를 향한 진전을 반영한다. 기후 운동가들은 팬데믹 봉쇄가 미래의 사회 통제를 위한 ‘시험적 실행’이라고 보고 있으며, 중산층과 노동계급은 이 엘리트들이 채택한 정책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다. 다보스 사람들이 채택한 ‘그레이트 리셋’은 사회적 이동성 억제와 번영 제한을 환경적 구원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삼았다. 우리는 한 사회주의자가 ‘환경 대처주의(eco-Thatcherism)’라고 깔끔하게 명명한 기후 정책과 관련한 빈곤의 첫 번째 홍수의 분명한 증거를 캘리포니아, 영국, 독일에서 목격했다. 기후 정책으로 인해 많은 중산층과 노동계급 가정의 올 겨울 연료비가 50% 인상될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은 글래스고와 같은 행사에 자랑스럽게 참석하는 상류층에게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결국 영국 왕실, 할리우드 유명인, 슈퍼모델, 마이클 블룸버그, 빌 게이츠, 제프 베이조스 등 부유층은 새로운 저택을 짓고, 200만 달러짜리 결혼식을 올리며, 개인 제트기를 타고, 심지어 우주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기후 ‘비상사태’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친환경 정책으로 인한 잠재적인 수익의 유혹은 벤처 캐피털리스트, 테크 기업 및 일반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 부문의 혼란을 이용하려는 월가 이해관계자들에게도 좋은 사업 전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사람들이 과학을 심각하게 오용하고 공포를 조종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기 시작할 것이다. 종말론적 신학에 의해 정당화되는 중세와 같은 (대중의) 궁핍화가 인류의 피할 수 없는 궤적을 정의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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