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헤미안 그로브에서 엘리트들에게 밀크쉐이크 시중을 들었다. (1)

나는 보헤미안 그로브에서 엘리트들에게 밀크쉐이크 시중을 들었다. (1)

 

 

엘리트들이 매년 은밀한 모임을 갖는 장소로 알려진 보헤미안 그로브에 관한 글입니다. 글의 분량이 긴 관계로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1957참가자

1957년 보헤미안 그로브에서 찍힌 사진. 사진 왼쪽의 로널드 레이건과 오른쪽의 리차드 닉슨은 각각 1981년과 1969년에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

 

 

 

크리메이션오브캐어

모임 첫 날 밤에 열리는 ‘Cremation of Care’ 행사의 모습

 

 


 

 

(1)

 

리차드 닉슨은 ‘누구나 미국의 대통령이 되기를 열망할 수 있습니다만, 보헤미안 클럽의 대표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보헤미안 그로브 근방의 캘리포니아 소노마 카운트에서 자라는 아이가 보헤미안 클럽의 폐쇄적인 캠핑장에서 서빙 일 자리를 얻는 것은 쉽다.

 

엘리트들이 야생에서 편안히 쉬기 위해서는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매년 수백의 젊은이들이 야외 테이블을 치우고 포르쉐를 주차하면서 몇 주를 보내기 위해 채용 과정에 줄을 선다.

 

1872년에 설립된 보헤미안 클럽은 본래 언론인들과 음악인들로 구성되었었다. 그러나 그 이후 여러 해가 지나면서 이 예술가들의 고객들이 회원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보헤미안 클럽은 정치인들과 강력한 회사 중역들과의 관련성으로 알려져 있다. 회원들과 손님들에는 딕 네니, 월터 크론카이트, 도널드 럼스펠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아이젠하워부터 시작한 거의 모든 공화당 출신 전직 대통령을 포함하고 있다. 소노마 카운티에 위치한 보헤미안 그로브는 2,700에이커의 숲으로 매년 여름 회원들이 아름다운 삼나무 밑에서 잠을 청하고 예술 활동에 참여하고 술에 취하게 되는 삼 주짜리 야영 기간동안 일할 지역 아이들을 채용한다.

 

우리들의 대부분은 19, 20, 21세였다.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여전히 소노마 카운티에서 부모와 살면서 커뮤니티 대학을 다니거나 학교를 쉬는 중이었다. 이 글에서 언급되는 아이들의 대다수는 음식을 나르고 식기를 치우거나 주차하는 기본적인 일을 맡았다. 소노마는 생계비가 높고 미국 내 시골지역 중에 세번 째로 집이 없는 아이들의 비율이 높으며 풍요로운 샌프란시코 근방보다 임금이 낮은 곳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자리는 환영을 받으며, 지역 내에서 경험 없이도 얻기 쉬운 몇 개 안 되는 일자리이다.

 

‘보헤미안 그로브에서 일을 구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마도 중범죄자이거나 인터뷰 자리에 엉망인 상태로 나갔을 겁니다’ 라고 일 년 동안 음식을 나르는 일을 했고, 여러 해  주차를 맡았던 올리비아가 말했다. “대리 주차 일에 훈련은 전혀 필요하지 않아요, 전혀요.” “그들은 당신을 현장에 바로 투입합니다. 당신은 30만 불 나가는 벤트리를 주차하게 되고 그들은 ‘어서, 서둘러, 빨리’ 라고 말하죠.”

 

창설 때부터 남성만 가입할 수 있는 보헤미안 클럽은 1978년에 캘리포니아 주 대법원에서 차별로 판결이 날 때까지 여성은 그곳에서 일하는 것 조차 금지되었다. 내가 보헤미안 그로브에서 일한 것은 대학에서 첫 해를 보내고 난 2009년 여름으로 아주 오래 전 일이다. 그러나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은 주차, 그리고 오래된 삼나무 나무로 둘러싸여 있고 수백 명의 회원들을 위한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는 식사 구역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땅에는 빨간색 선으로 여성들이 허용되지 않는 구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관리, 수송과 같이 더 돈이 되는 일들은 빨간 선 너머에 있었다.

 

두 번의 여름을 시중들면서 보낸 데본은 ‘보헤미안 그로브는 오지 중의 오지’ 라고 말한다. 캠프장은 작고 외딴 몬테 리오 마을 밖에 위치해 있고, 심지어 주유소로부터도 수 마일 떨어져 있다.

 

캠프 내에서 여자들의 이동 제한 때문에 식사 구역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캠프장을 통과해야만 일터로 갈 수 있었다. 구불구불한 진입로를 지나서 검문소, 그리고 먼지가 날리는 커다란 주차장에 도착하면, 우리는 주차된 밴에 나누어 타고 이동한다. 한 번에 15명이 타고 먼지 날리는 길을 지나간다. 만약 늦게 도착하면 지각 처리되고 40분에 대한 임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곳은 불규칙하게 위치한 수십 개의 개별 캠프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종류는 기본적인 전기만 있는 나무판 위에 지은 천막에서부터 개인 요리사와 바가 준비된 독립적인 건물까지 다양하다. 회원들은 이 캠프장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점차 취해가고 마음 내키는대로 나무에 소변을 본다. 직원용 승합차가 있는 소변금지 구역도 소용이 없다. 식당에서 접시 닦는 일을 했던 스테판은 말한다. “한 번은 식당에서 주차장 사이의 400미터 거리를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수십 명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을 보았죠.” “그들은 길에서 바로 옆에 있는 나무에 오줌을 눕니다. 어떤 사람들은 직원 트럭을 피하려고 하지도 않아요. 우리는 이들의 뒤에서 달팽이 속도로 운전해서 따라가야 했습니다.”

 

 

 

 

Source: gawk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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