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정부 혁명군 소속 도덕 지도부가 2001년에 있었던 미국의 CIA 국장 조지 테닛과 예멘 대통령 알리 압둘라 살레 사이의 두 차례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CIA 국장인 테닛은 2000년 10월 12일, 예멘의 항구인 아덴에서 발생해 17명의 사망자와 37명의 부상자를 낳은 미 군함 USS 콜에 대한 알카에다 테러의 책임을 묻기 위해 예멘에 구속되어 있던 알카에다의 리더 안와르 알아울리키를 48시간 이내에 풀어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LEAKED: Former CIA Director George Tenet implores then-Yemeni President Ali Abdullah Saleh to release Anwar al-Awlaki, who would become a top leader of al-Qaeda in the Arabian Peninsula from prison in connection to the bombing of the USS C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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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ex Rubinstein (@RealAlexRubi) March 22, 2021
통역으로 진행된 통화에서 살레 대통령은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미국의 FBI가 이미 예멘의 수도인 사나에 와 있으니 FBI와 상의하라는 의견을 전달했으나 CIA 국장은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이 자는 내 사람이고, 내 소관입니다. 내 문제입니다… 이 자는 반드시 석방되어야 합니다.”
테닛 국장은 통화에서 알아울리키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기를 거부했다. “전화 상으로 그의 이름을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예멘 정부의 보안 및 정보부 부국장인 압둘 카디르 알샤미는 예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CIA 국장이 석방을 요구했던 인물이 알아울리키라고 밝혔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시민권자인 알아울리키의 암살을 승인했고, 결국 그는 2011년 미국의 드론 공격에 의해 예멘에서 사망했다. 당시 이 사실은 기밀로 처리되어 알려지지 않았으나 2014년에 관련 문건이 기밀 해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미국 정부가 미국 시민권자인 개인의 암살을 승인한 전례가 없었을 뿐 아니라, 그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무시하고 암살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알샤미 부국장은 암살된 알아울리키가 FBI와 협력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걸프 연구소의 알리 알하메드 씨는 뒤늦게 공개된 CIA 국장과 예멘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저는 오랫동안 이 말을 해 왔습니다. 알카에다, IS가 자생적이고 국가의 지원을 받지 않는 조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완전히 어리석습니다. IS는 온갖 미국산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허공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알카에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공격을 받아온 이 조직이 20년 동안 생존하고 퍼져나간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닙니다. 워싱턴 DC와 카타르, 사우디 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의 안보 및 정보기관, 알리 압둘라 살레가 배후입니다.”
알카에다의 리더인 안와르 알아울리키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벌어지는 중에도 미국, 영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행적을 보였다. 1971년 미국 뉴멕시코주에서 예멘인 부부 사이에 태어난 그는 미국이 지원하는 아프가니스탄 무장 단체로 알카에다, IS, 탈레반의 전신인 무자하딘 소속으로 훈련을 받았다. 당시 CIA는 소련의 지원을 받는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정부를 무너트리기 위해 반군인 무자하딘에 200억 불을 비밀리에 지원했다.
알아울리키는 1996년까지 미국에서 무자하딘 소속으로 해외에서 싸울 전사를 모집하는 일을 담당한 후, 덴버에서 샌디에고로 이주해 마스지드 아르리바트 알이슬라미 사원의 종교 지도자가 되었다. 이 사원에 소속되어 있던 나와프 알하즈미, 칼리드 알미흐드하르, 하니 한주르는 9/11 테러 당시 여객기들을 납치하는 일을 맡았다.
2000년 4월에 공개된 쇼타임의 다큐멘터리 ‘최장의 전쟁(The Longest War)’에 출연한 전 CIA 지부장 밥 그레이너는 CIA가 9/11 테러의 배후인 알카에다의 리더 오사마 빈 라덴을 암살하지 못했던 건 1998년 8월 빌 클린턴 대통령의 명령 때문이었다고 폭로했다. “우리는 한 손이 뒤로 묶인 채 이 위협을 제거하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9/11 테러 직후 알아울리키는 FBI의 조사를 네 차례 받았으나 체포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는 “FBI는 9/11 조사위원회와 의회에게 알아울리키를 구금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라고 보도했다. 2002년에 여권 위조 혐의로 체포되었을 때도 연방 판사는 그의 석방을 명령했다.
알아울리키의 아버지인 나세르 알아울리키는 미국 국무부의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미국 뉴멕시코주에서 대학 교육을 받았고, 졸업 후에는 예멘의 살레 정부에서 근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