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에 99세로 사망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인 필립공의 인구 통제 발언 진위를 놓고 네티즌과 팩트체크 매체가 설전을 벌이고 있다.
영국의 언론사인 가디언은 2009년 글에서 필립공이 1988년에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만약 제가 환생한다면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돌아와 인구 과잉을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올해 필립공이 사망하면서 그의 과거 발언이 인터넷에서 재조명되자 언론사와 팩트체크 매체들은 그의 발언에 대한 팩트체크를 실시하면서 발언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비지니스 인사이더는 필립공의 1988년 인터뷰에서 나온 이 발언이 농담이며 필립공은 본래 논쟁적이고 공격적인 유머 감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를 과대 해석해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팩트체크 매체인 스놉스 닷컴은 필립공의 발언이 독일의 통신사인 Deutsche Presse Agentur(DPA)의 1988년 8월 보고서에 등장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해당 보고서를 구하기가 힘들다고 밝히면서 그의 발언은 1986년에 나온 책인 ‘동물로서의 사람들(People As Animals)’의 서문에서 발췌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멸종위기에 처한 것보다 개체수가 더 줄어든 동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어떨지 궁금하다. 인구 폭발로 인해 동물의 생존을 부정한 인간에 대한 동물의 감정은 어떨까?… 나는 특히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환생을 요청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고 고백해야겠지만 아마도 도를 넘고 있는 것 같다.”
스놉스 닷컴은 미국의 작가이자 예술가인 콜스 플러는 저서 ‘동물로서의 사람들’에서 유명인 지인들에게 동물로 환생한다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은지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모아 책을 출간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필립공의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태어나 인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언 자체는 사실이지만 책 저자인 콜스 플러의 재미를 위한 책에서 나온 내용이므로 발언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필립공은 인구 통제 발언을 수차례 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 왕실의 인구 통제 발언은 필립공만의 의견이 아니었다. 현재 세계경제포럼의 설립자 클라우스 슈밥이 주도하는 ‘그레이트 리셋’에 참여하고 있는 찰스 왕세자도 2010년 6월에 자연과의 조화를 위한 인구 통제의 필요성을 역설한 연설로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거대 도시가 성장하고 있는 지금, 저는 이러한 종류의 계획들이 높은 출산율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문화라는 사실을 좀 더 정직하게 대면하지 많으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의 역경을 도울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 두렵습니다.”
찰스 왕세자의 아들인 윌리엄 왕자도 2017년 11월에 런던에서 열린 터스크 갈라 저녁식사에 연설자로 등장하여 인구 감소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러한 (인구) 증가가 야생동물과 서식지를 엄청난 압박에 빠뜨린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도시화, 기반시설 개발, 경작 등은 그 자체는 좋지만 우리가 지금 계획과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끔찍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2009년 5월 31일 기사에서 가디언은 5월 5일에 데이비드 록펠러가 소집한 자리에 빌 게이츠, 조지 소로스, 워런 버핏, 테드 터너, 오프라 윈프리 등의 억만장자 자선 사업가들이 모여 자신들의 모임을 ‘좋은 클럽(Good Club)’이라고 부르며 전 세계 인구 통제를 주제로 회의를 가졌다고 보도했다.
2009년 5월의 굿 클럽 모임 후 빌 게이츠는 2010년 TED 연설에서 인구 통제를 위한 해결책으로 백신과 낙태를 제안했다. 그는 이 연설 말미에 백신 등으로 인구를 최대 15% 줄이겠다고 발언해서 청중을 당황하게 했는데 백신으로 인구를 줄이는 구체적인 방법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록펠러 재단은 이미 1900년대 초반부터 우생학을 기반으로 시민 운동으로 가장한 인구 통제 활동을 지원했고 록펠러 가문의 가신으로 불리는 헨리 키신저는 국무장관 시절 내부 회의에서 유엔 등을 통해 세계 인구를 줄이려는 계획을 세운 사실이 있다.
현재 기밀 해제되어 국무부 산하 USAID 웹사이트에서 다운로드가 가능한 이 보고서는 1974년에 헨리 키신저의 지시 하에 만들어진 정책을 담고 있어 흔히 ‘키신저 보고서’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보고서 명칭은 NSSM-200이다. 이 보고서의 내용 중 일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 경제는 해외, 특히 저개발 국가들로부터 점점 더 많은 양의 광물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 사실은 미국이 공급 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안정성에 대한 관심을 높여준다. 출산율 감소를 통한 인구 감소가 그러한 안정의 전망을 증가시킬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인구 정책은 자원 공급과 미국의 경제적 이익과 관련이 있게 된다.”
“인구 조절을 위한 원조는 미국의 특별한 정치적, 전략적 이해관계가 있는 가장 크고 빠르게 성장하는 개발도상국들에 일차적으로 집중해야 한다.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멕시코, 인도네시아, 브라질, 필리핀, 태국, 이집트, 터키,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등이 있다… 동시에 미국은 다자간 기관, 특히 80여 개국에 이미 인구 지원을 늘리고 있는 유엔 인구 활동 기금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이는 미국의 이익 측면에서도 바람직하고 유엔의 정치적 측면에서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