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스피러시 뉴스입니다.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후 주요 언론사들은 하마스를 테러 단체로 부르고 있고, 이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민간인 학살과 병합 시도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닙니다.
2021년 5월 30일에 파키스탄 언론사 디 익스프레스 트리뷴에 실린 무니스 아흐마 박사의 글을 소개합니다. 아흐마 박사는 카라치 대학 국제관계학과 교수이자 중동연구소 소장입니다.
하마스의 민간인 학살은 당연히 비난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마스의 창설을 지원하여 팔레스타인을 약화하려고 한 주체가 이스라엘임도 기억해야 합니다. 중동의 국제관계는 서방의 주류 언론이나 국내 일부 ‘전문가들’이 말하는 대로 선과 악이 쉽게 구분될 정도로 간단하지 않으며 정부와 무장 단체와의 복잡한 이해관계 및 거래도 있습니다.
글에 등장하는 인티파다(intifada)는 ‘민중봉기’라는 의미의 아랍어로 팔레스타인인들의 반이스라엘 저항운동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창설을 어떻게 그리고 왜 도왔는가?
PLO에 대항하는 하마스의 창설을 도운 것이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문니스 아흐마 박사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저항 조직인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최근 가자지구에서 2주 동안 진행된 작전 기간 동안 하마스를 청산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하지만 1980년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에 대항하는 하마스의 창설을 도운 것이 이스라엘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스라엘은 왜 하마스의 창설을 도왔고 그 목적을 위해 이 자원을 어떻게 활용했을까?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잔인한 행동을 취함으로써 하마스를 강화했고, 하마스가 세속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조직인 PLO에 도전했을 때 팔레스타인의 투쟁은 어떻게 분열되고 악화되었을까? 1964년에 결성된 PLO는 헌장에 이스라엘의 파괴를 촉구하는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PLO 간의 평화를 위한 오슬로 프로세스가 시작되면서 팔레스타인 헌장에서 이 조항이 삭제되며 유대인 국가가 인정되었다. 마찬가지로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이스라엘 정부는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의 중재로 1993년 9월 13일에 역사적인 PLO-이스라엘 협정이 체결되자 PLO와의 접촉 금지를 해제하고 PLO를 인정했다. PLO가 이스라엘을 인정하자 하마스는 유대 국가와의 평화 프로세스에 반대하고 이스라엘의 파괴를 요구했다.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성직자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이 설립한 무자마 알 이슬라미야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자선 및 복지 사업을 하는 무해한 단체로 간주하고 후원했다. 무자마 알 이슬라미야는 이후 1987년 12월 1차 인티파다가 발발하기 전에 하마스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무자마 알 이슬라미야와 그 후계 조직인 하마스를 PLO에 비해 덜 악하다고 생각했고 팔레스타인을 분열시키는 것이 유대 국가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이스라엘이 PLO를 테러 조직이자 자국의 이익에 큰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다면, 하마스 역시 세속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시각으로 PLO를 반대했다. 그래서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PLO에 대항하는 자연스러운 동맹으로 여겨졌다. 1988년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방위군(IDF) 요원 2명을 살해하자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등을 돌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가자지구에서 복지 및 자선 단체를 표방하며 이스라엘의 호의를 얻었던 하마스는 전술을 바꿨다. 하마스는 1차 인티파다에서 수백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살해한 유대 국가와 화해한 야세르 아라파트에 환멸을 느낀 팔레스타인인들의 대중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 PLO의 이스라엘과의 평화 프로세스를 이용했다.
하마스 창설을 도운 이스라엘 관리들의 후회가 잘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튀니지 태생의 유대인으로 1970~1980년대 가자지구에서 종교 문제를 다루는 이스라엘 관리로 일했던 아브너 코헨은 “유감스럽게도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만들었습니다”라고 한탄한 바 있다. 그는 이슬람 운동이 세속적인 팔레스타인 라이벌들을 제치고 세력을 형성한 후 오늘날 이스라엘의 멸망을 요구하는 무장 단체인 하마스로 발전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코헨은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가자지구의 이슬람주의자들을 억제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PLO와 그 지배 세력인 야세르 아라파트의 파타 세속 민족주의자들에 대항하는 균형추로서 이들을 수년간 용인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장려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셰이크 아메드 야신이라는 절름발이 반맹 성직자가 하마스가 되는 토대를 마련하는 동안에도 협력했다. 하마스가 가자지구에 자리를 잡고 이스라엘과 대치하기 위해 자신을 복지 및 자선 단체로 위장해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감시를 피할 만큼 영리했다는 뜻일까?
1967년 6월부터 2005년까지 가자지구는 이스라엘군이 통치했다. 2005년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철수했지만 2007년에 하마스가 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장악하자 가자지구에 대한 육상, 공중, 해상 봉쇄를 단행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창설을 도운 방법은 1980년대 가자지구에서 근무했던 이스라엘 관리 앤드루 히긴스가 내레이션으로 설명한다. 그는 2009년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일련의 사건을 돌이켜보면 우리가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군이 주도하는 가자지구 행정부는 학교, 진료소, 도서관, 유치원 등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하반신 마비 성직자를 호의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셰이크 야신은 이슬람 단체인 무자마 알 이슬라미야를 결성했고, 이 단체는 이스라엘에서 공식적으로 자선 단체로 인정받은 후 1979년에 협회로 승인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또한 현재 무장 투쟁의 온상으로 간주되는 가자지구 이슬람 대학교 설립을 승인했습니다. 이 대학은 2008~2009년 작전에서 이스라엘 전투기가 가장 먼저 공습한 목표물 중 하나였습니다. 야의 무자마는 하마스가 되었고,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탈레반(좌파 적과의 전투에서 서방에 의해 전멸한 이슬람주의 단체)이 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숨겨진 무기고를 발견한 후 1984년에 야신에게 12년형을 선고하고 투옥했지만 그는 1년 후 석방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PLO에 대항해 후원하던 셰이크 야신은 2004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했다. 그 무렵 하마스는 PLO로부터 가자지구의 통제권을 빼앗아 강력한 무장 조직으로 부상했고, 특히 여성 복장 규정으로 히잡을 강요하는 등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샤리아를 따르도록 촉구하는 이슬람주의 조직임을 선포했다. PLO보다 더 위험한 것으로 드러난 하마스의 진짜 동기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마나한 베긴과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의 근시안적인 판단 때문이었을까? 가자지구에서 세속적인 PLO와 이슬람주의 하마스 간의 충돌이 빈번해졌고, 팔레스타인의 내분을 바라던 이스라엘은 만족감을 느꼈다. 당시 가자지구의 군사 정보 장교였던 샬롬 하라리 준장은 가자지구에서 나가는 길목에 검문소를 지키고 있던 이스라엘 군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고 말한다. 그들은 비르자이트에서 파타와의 전투에 참여하고자 하는 이슬람 활동가들을 태운 버스를 세웠다. 유발 하라리는 “저는 ‘그들이 서로 불태우게 하고 싶다면 그냥 놔두시죠’라고 말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당시 이스라엘 군부는 이슬람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계속 싸우게 되면 이스라엘과의 전투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를 불태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또한 1980년대 초 가자지구의 이스라엘 군 총독이었던 이츠하크 세게브 준장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PLO와 샤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파타당의 세속주의자 및 좌파에 대항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이슬람 운동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말했다(그는 직접 하마스를 ‘이스라엘의 피조물’이라고 불렀다). 세게브 장군은 심지어 하마스에 제공한 이스라엘 납세자의 자금이 나중에 납세자들의 살해에 사용되었다고 인정했다.
위의 논의에서 두 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무자마 알 이슬라미야에 이어 하마스를 지원하고 후원하는 것은 순전히 이스라엘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또한 아프가니스탄과 다른 지역에서 다양한 지하드 그룹을 만들고 키운 미국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도 하마스를 만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1990년대 하마스의 등장과 급부상, 그리고 그 이후 PLO와 팔레스타인 공동체의 약화는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점령과 가자지구 봉쇄를 더 튼튼하게 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끊임없이 시련을 겪어야 했다.
1. 현 이스라엘-가자 사태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9년 전, 워싱턴포스트의 기사입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그리고 궁극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약화하기 위해 하마스의 등장을 도운 역사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하마스의 창설에 도움을 주었는가?”https://t.co/lZHSC7tEk2 pic.twitter.com/oP4tGlBsf7
— Conspiracy News (@NewsConspiracy) October 25, 2023
Netanyahu’s target is NOT Hamas pic.twitter.com/vybHto2u9y
— Robin Monotti (@robinmonotti) October 24, 2023
#Ceasefire now please. #Israel and #Palestine must reject #Netanyahu (#Likud) and #Hamas. They live off of rage, vengeance, and war. A peaceful resolution is possible with diplomacy. US must be neutral and help forge a peace deal.#Gaza #IsraelPalestineWarhttps://t.co/s9YMXJn20C
— Jean (@HigherCalling91) October 23,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