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피에 반대했던 리비아인들도 정권 교체를 후회한다.

가다피에 반대했던 리비아인들도 정권 교체를 후회한다.

 

 

 

 

 

 

짐바브웨의 선데이 메일은 2011년 무아마르 가다피 정부의 전복을 유감으로 생각하는 많은 리비아인들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이들 중에는 당시 가다피 정부에 대항해 무기를 든 사람도 있었다.

 

 

전 혁명군 출신인 모하메드 씨는 말했다.

 

“저는 처음 며칠간 혁명에 동참하여 가다피에 대항해 싸웠습니다. 2011년 이전에 저는 누구보다도 가다피를 미워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삶은 훨씬 더 힘들어졌고, 저는 가다피의 열성팬이 되었습니다.”

 

 

2011년. 세계 언론들은 가다피가 자국민을 상대로 살육을 저지르고 있으므로 국제 사회가 리비아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휴먼라이츠워치가 입수한 통계 분석에 따르면, 이는 거짓이다. 영국의 인디펜던트 지는 당시 보도된 가다피에 대한 주장들 중 상당 수가 조작된 것이 국제앰네스티의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고 보도했다:

 

나토 리더들, 반군들, 언론은 2월 15일의 반란을 시작으로 가다피 정권이 집단 강간을 하고, 외국 용병을 채용했으며, 민간 시위대를 대항하기 위해 헬리콥터를 사용한다는 등의 일련의 이야기들을 생산해냈다.

 

국제앰네스티가 실시한 조사는 이와 같은 인권 위반 주장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했으며, 주장을 신뢰할 수 없거나 주장 자체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몇몇 경우에는 벵가지에 있는 반군들이 의도적으로 거짓 주장을 만들어 내거나 증거를 조작한 듯 보였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시리아 국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승인한 비행금지 구역 설정 등으로 인해, 반군의 근거지인 벵가지에 공습을 앞두고 있던 리비아 정부군은 공격을 멈추어야 했다. 그리고 곧 리비아에 나토 연합군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리비아에 나토의 개입을 강력히 주장하던 프랑스 대통령인 니콜라 사르코지는 자신이 원하던 목표대로 가다피를 암살하는데 성공하였다. 당시 사르코지는 가다피로부터 2007년 5천만 유로를 받아 선거에 사용한 혐의로 조사를 받는 중이었다.

 

 

나토와 함께 가다피에 대항해 싸운 리비아 반군 사령관은 자신의 전투병들에 과거 이라크 전에서 미군을 상대로 싸운 알 카에다와 관련된 지하디스트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라크에서 이 전사들은 알 카에다로 알려졌었고 지금은 IS로 불리고 있다.

 

 

가다피 정권 하의 리비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생활 수준을 자랑하던 국가였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했고, 공교육을 통해 낮은 문맹률을 가졌다. 그러나 2015년 리비아의 인간개발지수는 27단계 하락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현재 2백만의 리비아 아이들이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Source: theantim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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