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이야기는 플로리다 주의 사우디 아라비아인들의 이야기이다.

9/11 테러 이야기는 플로리다 주의 사우디 아라비아인들의 이야기이다.

 

 

 

 

컨스피러시 뉴스입니다. 익살이 님이 보내주신 2016년 4월 28일, Madcowprod.com에 올라온 다니엘 홉시커 씨의 글입니다.

 

 

 


 

 

 

 

 

 

 

다음과 같은 독자 편지를 받았다.

 

“그런데 이런 모든 ‘아웃사이드 잡’이 결국 네오콘들과 다국적기업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나요?” 누군가가 이렇게 이메일을 주셨다. “[미국인이 아닌] 사우디 아라비아인들이 그 테러용의자들[로 알려진 자들]을 루디의 항공학교에 보내지 않았나요? 그들에게 정부에서 발급하는 신용카드를 줬다고요? 9/11 당일 날 아침에 훈련이 잡혀 있었다고요? 부통령 체이니가 [NORAD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했다고요? 은폐공작을 진행시켰다고요? 저는 당신 글에서 그런 내용들을 유추할 수 없었어요.

 

[그나저나 나의 웹사이트가 이번 주 늦게까지 다운되었었다. 1월에 해킹당해서 웹사이트 호스트를 옮겼다. 이런 일들은 종종 일어난다. 굳이 일루미나티를 탓하지는 않겠다.]

 

한 번만 더 설명을 시도해 보겠다. 부디 이번이 마지막이길. 그렇지 않다면 너무 따분해져서 죽을지도 모른다. 아들 부시 같은 지적 수준의 사람들이 너무나도 명확한 거짓 정보를 마치 성경 구절 읽듯 앵무새처럼 쉴 새 없이 반복하며 들려준다면, 누구나 나처럼 느낄 것이다.

 

내가 플로리다 주에서 직접 본 것들을 나열해보겠다 : 사우디 아라비아인들이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들이 도처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제 말해봐라. 누가 사우디 아라비아인들보다 더 많은 뇌물을 찔러줄 수 있나? 아무도 없다. 미국에서는 누가 뇌물을 받나? 누구나 다 받는다. 누구든 당신들이 이미 아는 이름의 사람들이, 또는 모르는 이름의 사람들이. 미국은 부패한 나라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현재의 미국은 마치 2세기경 로마제국과 같다.

 

 

 

이슬람 근본주의자 또는 아랍 마약 카르텔의 중간보스?

 

 

1999년에 플로리다 SW에는 항공학교를 다니는 아랍인 학생들이 몇 명 있었다. 2001년에는 수천 명에 이르렀다. 팬핸들에 위치한 공군기지 소속의 한 훈련교관이 나에게 말해줬다. “예전에는 이란인들이 들끓었는데, 요새는 죄다 사우디 아라비아인들이에요.”
그들은 거기에 자비로 갔을까? 절대로 아니다. 미 중앙정보국은 이런 일을 알고 있었을까? 당연히 알고 있었다. 나는 성난 목소리로 퇴물 정보요원 한 명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이런 일들을 모르고 있을 수 있었느냐고. 그의 답변은 온순했다. “뭔 소립니까, 그들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거라 확신해요.” 그가 말했다. “몰랐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플로리다 주의 베니스와 그 주변 일대는 원래부터 첩보원들로 넘쳐나는 지역이다. 이웃동네 샤를롯 카운티-테러 용의자 무하메드 아타가 잠시 살았던 동네이지만 9/11 조사위원회보고서에는 누락되어 있는 사실이다–의 보안관이 말하길, 자신이 직접 40년 동안 그 지역에서 진행되어왔던, 그와 그의 동료들이 무력해서 도저히 멈추게 할 수 없었던, 비밀첩보활동을 쭉 지켜봐왔기 때문에 9/11 테러는 전적으로 미 중앙정보국의 책임이라 믿는다고 했다.

 

이러한 말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남부 촌뜨기 보안관이 9/11 테러의 책임이 미 중앙정보국에게 있다고 말한 것이다. 뭐, 그가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사실인 양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플로리다에서 많은 것을 들었고, 많은 것을 봤고, 많은 것을 배웠다. 무려 18개월 동안 플로리다 주의 베니스는 테러리스트 납치범들의 본부가 되었었다. 절대로 지나칠 수 없는 9/11 테러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커다란 범죄현장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지역에서 그 누구보다 테러리스트들의 음모와 관련된 증거들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다른 모든 언론인들이 찾아낸 총량보다도 더 많은 증거를 찾아냈다.

 

왜냐하면 플로리다 주 베니스에는 나를 제외하면 [9/11 테러를 연구대상으로 삼는] 그 어떤 언론인이나 조사관이나 학자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히터도 고장난 15년 묵은 고물차를 몰고 한겨울에 무려 1천 마일을 운전하며 모하메드 아타의 여자 친구를 찾아서 인터뷰를 하려 했다. 아타에게 여자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플로리다 주 SW의 조그마한 지역신문 3개만을 제외하면. 나는 이 웹사이트[매드카우모닝뉴스닷컴]에 그때 인터뷰 전문을 올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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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킬로의 헤로인은 업계에서 대단한 양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9/11과 관련하여 이제까지 알려진 그 어떤 비밀보다도 더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모하메드 아타가 온지 3주가 지난 이후, 그가 다녔던 항공학교 주인은 자신의 제트기에 19킬로의 헤로인을 싣고 움직이다가 체포당했다.

 

이 때문에 50년 후든 100년 후든 아니면 천 년 후든, 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때 누군가는 나에게 감사해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보람을 느낀다. 적어도 내가 쓸모있다는 뜻일 테니까.

 

이것이 28페이지에 달하는 무사오이의 증언을 공개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나의 저서 ‘웰컴 투 테러랜드’에는 택시 운전수가 플로리다 베니스에서 무사오이를 태웠다는 증언이 나온다. 물론 이와 같은 얘기는 그 누구도 한 적이 없다. 무사오이는 베니스에 사는 친구들을 방문하기 위한 목적으로 왔었다. 그 운전수는 손님을 올란도 공항으로 태워주기 위하여 목적지로 여러 차례 간 일이 있었기 때문에 기억했다[플로리다 주 베니스에는 단 두 대의 택시밖에 없다].

 

그때 무사오이는 택시운전수에게 자신의 짐을 함께 운반해달라고 했고 그를 도왔다. 그것은 트렁크였는데 두 사람이상이 들어야 간신히 운반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무거웠다. 택시운전수가 아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나는 이후에 전직 NSA 요원이었던 자에게 그렇게 무거운 것이 무엇일지 물어봤다. 그는 단 일초의 주저도 없이 곧바로 “금괴”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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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와 플로리다의 사우디-아라비아인들

 

 

캘리포니아 남쪽으로의 짧은 일주일짜리 여행에서 나는 한 남성에 대한 증거를 찾아내고 이를 보고했었다. 9/11 진상규명위원회 의장이 이 자를 가리켜 “9/11 이전에 그 테러음모를 밝혀낼 수 있었을 최고로 좋은 기회”라고 언급했었다.

 

뉴욕 타임즈에 의하면, “그 19명 중에서 샌디에고 교외의 서민층 주거지역에 살던 65세의 사교적인 샤이크 박사만큼, 그와 가깝게 지낸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샤이크박사는 자신의 시민으로서의 의무에 대하여 대단한 자긍심을 갖고 있었고 특히 경찰서의 시민게시판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였다.”

 

히스토리 커먼스[www.historycommons.org]에 의하면 “9/11 이후의 세밀한 조사에도 불구하고, 샤이크 박사의 배경이나, 왜 그가 미 연방수사국의 수사 대상이 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압두사타르 샤이크는 샌디에고 주립대학의 은퇴한 영문과 교수이고 아메리칸 코먼웰스 대학의 국제프로젝트의 부의장을 역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찾아낸 바에 의하면 전혀 사실 무근이었다. 그의 프로필의 모든 것들이 거짓이었다. 그는 샌디에고 주립대학에서 가르친 적이 없었다. 그는 영문과 교수였던 적도 없다. 그 어디에서도. 그는 미군과 정보기관에 연줄이 있는 사기꾼들이 운영하는 곳에서 가짜 박사학위를 구매했다. 그가 국제 프로젝트의 부의장을 역임하고 있다는 그 대학 또한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아 참, 그리고 압두사타르 샤이크 또한 그의 본명이 아니다[그의 진짜 이름은 압두사타르 치이파이다].

 

그래서 누군가[대부분 남자들]가 냉소적으로 9/11과 관련된 여러 가지 질문을 해대면서 마치 자신이 그 누구에게도 절대 속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아무 근거도 없이 교활하게 나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면–보잉767이 거뜬히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논리의 빈틈이 있으면서–나의 반응은 완전히 무시하는 거다.

 

펜타곤은 1,600명의 인원으로 이루어진 부대를 갖추고 있고 그들은 오로지 심리전만 전담하고 있다. 그리고 멘켄이 “그 누구도 미국 대중들의 지적 수준을 과소평가해서 실패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제 좀 문제점이 보이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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